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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이 혁신성장의 답이다] ① 길영준 휴이노 대표 “애플보다 먼저 만든 ‘심전도 측정 지원 스마트워치’ 시판 못해”
입력 2018-11-05 18:31   수정 2018-11-06 08:44

(편집자 주) 들어가는 글: “제조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4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제1회 ‘메이커 페어’를 열며 강조한 말이다.

‘메이커’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제작과 판매의 디지털화를 이끄는 스타트업을 통칭한다. 이 같은 메이커들은 실리콘밸리의 씨앗이 됐다. 오바마 정부는 국가 경쟁력을 이끌어갈 주체를 메이커 기반의 스타트업이라고 믿고 이들을 지원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혁신 성장’도 중소·벤처기업이 중심이다. 성장의 주체가 더는 대기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경쟁력 있는 중소·벤처기업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성장의 기회가 많아졌다고 해서 그 결실이 확대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첨단 기술을 개발해 내도 규제에 가로막혀 주저앉는 스타트업이 적지 않다. 기존 법 체계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낸 스타트업은 지난한 인증 과정에 피로도를 느낀다. ‘제조의 민주화’가 이루어졌음에도 혁신 성장은 아직 요원한 이유다. ‘이투데이’는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들을 인터뷰해 혁신 성장의 거리를 함께 좁히고자 한다.

▲길영준 휴이노 대표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명우빌딩에서 심전도 측정 등이 가능한 스마트워치 ‘휴이노’를 소개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story@

애플은 올해 9월 심전도 측정 기능을 장착한 ‘애플워치4’를 공개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외신들은 하나같이 스마트워치 최초로 심전도 측정 기능을 지원한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애플워치4는 세계 최초가 아니었다.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는 3년 전 한국의 한 스타트업에서 이미 탄생했다. 의료기기 스타트업 ‘휴이노’가 그 주인공이다.

휴이노는 2014년 7월 부산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던 길영준(45) 대표가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휴이노는 2015년 심전도 측정 기능을 장착한 스마트워치를 개발했지만, 종전에 없던 제품이라는 이유로 의료기기 승인을 받지 못했다. 제품을 개발했음에도 국내 시판을 못 하는 가운데 애플워치4가 출시됐다.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존재 자체로 증명하고 있는 휴이노의 길 대표를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 S2에서 만났다.

휴이노의 스마트워치는 길 대표의 10년 연구가 녹아든 산물이다. 부산대 컴퓨터 공학과 박사학위를 따고, 2010~2014년 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자신의 연구를 제품으로 만들어 구현하기로 했다. 결심을 마치고 1년 반 정도 준비를 거쳐 그는 창업에 나섰다. 그 결과물이 심전도를 측정할 때 양손에 차는 심전도 장치를 시계로 옮겨온 스마트워치다.

길 대표는 “처음 제품을 개발해 내놨을 때 식품의약안전처(식약처)를 포함한 관계자들은 마치 코카콜라 병을 처음 본 부시맨처럼 ‘이게 뭐지’,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 하는 느낌이었다”며 “인증을 빨리해서 한국의 의료기기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크게끔 도와주자는 느낌은 없었다”고 말했다. 규제 개혁에 어려움을 느낀 길 대표는 7월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주관하는 ‘규제해결 끝장캠프’에도 참석해 어려움을 토로했다. 길 대표는 “끝장캠프 이후 식약처와 중기부의 도움으로 패스트 트랙을 밟아 속도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내년 2월쯤에 식약처의 인증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길 대표는 “최근의 바람을 ‘규제 태풍’이라고 표현한다면 휴이노는 태풍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며 “규제 혁신을 가장 갈망하는 분야는 의료기기 분야”라고 말했다. 동시에 “이대로 가면 국가 경제에도 큰 손실”이라며 “우버가 못 들어오는 나라, 원격 의료가 안 되는 나라는 큰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로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여러 관계 부처가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예컨대 원격의료만 봐도 개인 정보는 행정안전부, 의료 전송은 보건복지부, 클라우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움직여야 할 부처가 너무 많다.

애플워치4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는 억울함보다 보람과 뭉클함을 더 많이 느꼈다고 밝혔다. 길 대표는 “시장 진입에는 늦었지만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는 게 목표”라며 “데이터만 많다면 애플에 크게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래 의료 산업의 경쟁력은 데이터 중심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길 대표는 애플과 싸워 이기는 데 방점을 찍기보다 휴이노만의 특징을 살려 궁극적으로는 파트너십을 맺고 싶다고 강조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며 엿본 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에는 ‘NEVER, NEVER, NEVER, GIVE UP’이라고 적혀 있었다. 길 대표는 “내가 무모하지 않았더라면 도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만약 이 분야에 뛰어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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