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더덕 할머니와 노숙자의 자그마한 소동

입력 2018-08-0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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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주 금천구 마을공동체지원센터 팀원
서울의 지하철 환승역은 간혹 잘못 길을 들면 헤맬 만큼 크고 넓다. 그리고 그렇게 넓은 곳일수록 꼭 어딘가에서 더덕 향이 난다. 향의 진원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 그곳에는 매번 등이 굽은 할머니께서 계신다. ‘국내산 더덕’이라고 적힌, 박스 귀퉁이를 찢어서 만든 것 같은 종이와 함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마치 지하철역이 처음 생길 때부터 앉아 있었다는 듯이 할머니는 묵묵히 쪼그리고 앉아 날이 많이 상한 칼로 더덕 껍질을 벗기고 계신다.

얼마 전, 볼일을 마치고 가는 길에 환승역에서 자그마한 소동을 보았다. 노숙인과 더덕 할머니 사이에서 벌어진 실랑이였다. 역사 직원도 있었지만, 두 사람에겐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삿대질과 욕설 등등으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고조되어 갔다.

옆에서 들어보니 실상은 이러했다. 지나가던 노숙인이 할머니에게 공짜로 더덕을 얻어먹어 볼 심산이었는데 더덕 할머니가 매몰차게 거절했고, 이에 화가 난 노숙인이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으며 이수역 내의 영역 싸움으로까지 불거진 것이다. 언제부터 여기 앉아 있었냐며, 원래 이렇게 큰 역은 각자 자기 영역이 있는 것 모르냐며 노숙자는 소리쳤다. 할머니는 지지 않고 이 지하철역이 애초부터 당신 것이냐고 항변했다.

그 말싸움 장면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고, 역사 직원도 이미 지쳐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곳만 정지된 듯했다.

왜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자면 머리와 마음이 아파왔지만, 결국 그것은 ‘자그마한’ 소동이었다. 이미 ‘우리의 세계’에서 탈락한 사람들끼리의 ‘자그마한’ 소동이었다.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짓에서, 어쩔 수 없이 말리러 온 듯한 역사 직원의 행동에서 느낄 수 있는 정말이지 ‘자그마한’ 소동이었을 뿐이었다. 바쁘게 지나칠수록 맡을 수 없이 흩어져 사라지는 더덕 향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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