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사람이 사람을 떠나는 세상

입력 2018-04-1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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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인 상상의 금을 훌쩍 뛰어넘는 현실이 왔다. 새로운 세계와 아무리 친하려고 해도 지나치게 낯설어 쉽게 친해지지가 않는다. 어제는 비혼식(非婚式)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과 똑같이 청첩을 돌리고 축의금(祝儀金)도 낸다고 했다. “나는 평생 결혼 안 합니다”가 핵심이다. 비혼식의 주인공은 축의금으로 혼자 유럽 여행을 간다고 한다.

이젠 사람이 사람을 멀리하고 홀로의 생활을 즐긴다는 이야기는 나같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도 숱하게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내 앞에 현실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좋게 보면 긍정적인 면도 있다. 결혼을 안 하기로 하는 그 다짐 안에는 자신이 나약해지거나 소외감을 느끼거나 하는 외톨이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선택이라고 만인에게 공포하는 것이므로 다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외롭다고 하면서 사람을 피하는 것은 사람이란 존재에 대한 불신 탓이겠지만, 사람이 감정적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받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 안 하는 이유는 우선 육아에 돈이 들고 일에 방해되는 것이 싫다는 것. 최근 인기 모바일 앱에는 ‘토닥토닥 협동조합’이 있고 ‘비 내리는 단칸방’도 있다. 모두 말을 들어주는 대상이 되어 준다. 부모도 있고 아내나 남편도 있고 친구가 있어도 사람을 피해 앱에 들어가 그 안에서 대화를 나눈다.

‘비 내리는 단칸방’, 거기 들어가 보고 싶지 않은가. 따뜻한 빈대떡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만 아무것도 없다. 내 말을 받아주는 감정 없는 대상이 있을 뿐이다. 얼굴이 없다 해도 자존심 다치게 하지 않고 자신을 우월하게 대접해주고 믿어주는 로봇이 인간보다 위로가 되는 모양이다. 미국의 ‘감정 세라피 로봇’은 속마음까지 읽어주는 인공지능인데 30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191만 원이다.

왜 사람은 아닐까. 사람보다는 서로 모르는 감정 상태의 대화가 매력이 있는 것일까. 속 편한 것일까. 내내 그것이 아프고 궁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행복해지는 유일한 대상은 인간일 것 같은데 점점 인간은 인간에게서 멀어지고 있으며 사람 속 무인시대(無人時代)를 부르고 있다.

2016년 반려동물에 투지한 돈은 60조 원이라 한다. 놀랍지 않은가. 앞으로는 더욱 왕성해질 것 같다. 미국 해즈브로 장난감 회사는 ‘캣 2.0’이라는 신품을 출시했다. 살아 있는 고양이 털의 질과 다름이 없고 애교도 많다고 한다. 뻣뻣한 장작 같다고 투덜대던 내 남편이 살았다면 하나 사주고 싶다. 뿐만 아니라 약 먹을 시간까지 알려주는 똑똑한 아이다. 신경 죽도록 쓰이고 돈도 줘야 하고 아프다고 하면 돈도 마음도 바쳐야 잔소리가 적은 인간보다 백 배 좋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캣 2.0’은 밤늦게 들어가도 왜 늦었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며 엄청 친절하기만 하다. 어머나! 이렇게 좋다니! 그런데 이상하다.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낯설다.

인간은 인간으로 어려운 일을 함께 하므로 아주 작은 외로움이라도 견디며 서로 힘이 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 견디고 기다리고 내가 먼저 손을 잡는 사람의 향기가 바로 삶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버드대학의 75년 된 행복연구소의 연구 결과도 바로 인간관계의 성공이 인간의 행복 만족도를 높인다고 말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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