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글로벌 증권거래소…IT 기업에 IPO 주도권 빼앗겨

입력 2018-03-19 09:06수정 2018-03-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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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규정 유지하면 유망 기업 다른 시장에 빼앗길 수 있어…완화하면 지배구조 건전성에 악영향

전 세계 증권거래소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IT 기업들이 자사에게 유리한 조건을 찾아 시장을 선별하는 등 기업공개(IPO)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거래소들의 IPO 관련 규정이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질 위기에 놓였다고 19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분석했다.

기존 규정을 적용하면 유망 기업들을 다른 시장에 빼앗길 수 있다. 게다가 IT 대기업들이 상장 이전 유망 스타트업들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IPO 시장 파이가 줄어드는 상황이어서 전 세계 거래소들이 기업 유치를 위해 규정 완화에 몰두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규정을 너무 완화하면 상장사 지배구조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쳐 시장 자체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도쿄증권거래소를 산하에 두고 있는 일본거래소그룹의 한 임원은 “이유 없는 ‘부자상장’을 인정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SBG)이 이동통신 자회사인 소프트뱅크의 상장 방침을 표명한 것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도쿄증권거래소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동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IPO는 약 2조 엔(약 20조1764억 원)으로, 도쿄증시에서 모처럼 초대형 상장이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도쿄거래소 내부는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 상장하는 부자상장은 서구에서는 거의 없는 일본 특유의 자본정책이다. 이는 모회사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해 자회사 일반 주주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 도쿄거래소도 해외 투자자들의 비판을 의식해 그동안 부자상장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지난 2016년 부자상장을 한 업체는 총 270개사로, 10년 전 정점에서 약 30% 감소했다.

그러나 1개월 전 SBG의 발표로 기존 정책기조를 뒤집어야 할 형국에 놓인 것이다. 그렇다고 부자상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프트뱅크가 런던증시에 단독 상장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국 대기업을 포기하면 세계에서 도쿄증시에 대한 평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IPO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던 중국 증권당국도 규정을 완화하려 하고 있다. 알리바바그룹홀딩과 텐센트, 바이두 등 자국의 대표적인 IT 기업들이 해외에만 상장해 정작 중국 투자자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알리바바는 중국 정부가 이중상장 금지 규정을 폐지하면 올 여름에라도 본토증시에 상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알리바바는 지난 2014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25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IPO를 실시했다.

2014년 알리바바 유치 경쟁에서 미국에 패했던 홍콩거래소는 지난달 창업자 등이 의결권을 많이 보유할 수 있는 이른바 의결권 차등화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형태의 IPO를 인정하기로 규정을 바꿨다. 싱가포르거래소도 1월 홍콩과 비슷하게 규제를 완화했다.

거래소가 투자자와 기업 사이에서 ‘이해관계의 균형’을 다시 고려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기업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면서도 투자자의 이익은 보호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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