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고문기술자 이근안 근황은... 서울서 혼자 살아, 부인은 요양병원에

입력 2018-01-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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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1987' 스틸컷)

영화 '1987'에서 김윤석이 분한 박처원 치안감과 그의 분신인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근황이 전해졌다.

9일 방송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택가에 거주하는 이근안을 찾아 그의 근황을 알렸다.

1929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한 박처원은 해방 후 월남해 1947년 경찰이 됐다. 이후 대공 파트에서만 근무했고 간첩 수사에서는 상징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방송에 따르면 박처원은 10년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CBS 측은 이근안의 행방을 쫓았다. 이근안은 자신의 고문 행위뿐만 아니라 박처원 중심으로 진행된 당시 고문 수사의 전모를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여겨진다.

80대가 된 이근안은 허름한 다세대 주택 지하방에서 혼자 지내고 있으며, 부인은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근안은 "관련된 사람도 다 죽고 나 혼자 떠들어봐야 나만 정신 이상자 된다.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수차례 인터뷰를 거절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 역시 '박처원 사단' 중 하나였다. '김현정의 뉴스쇼'에 따르면 박처원과 이근안의 관계는 상사와 부하 정도가 아니라 '분신'이라는 것.

특히 1985년 김근태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이 경찰 조사를 받았을 때 이근안을 끌어들인 당사자가 바로 박처원이다. 박처원은 '김근태가 입을 열지 않는데 당신이 맡아야겠다'며 이근안에게 고문을 지시했다.

'김현정의 뉴스쇼'는 故 김근태 의원의 고문 가해자 관련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박종철 군 역시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내놨다. 김근태 의원 측은 1986년 1월 고문 가해자들을 고발했으나 이때 직접 고문한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 고발장에 이근안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했다. 고발장이 접수돼 1년간 수사가 이뤄졌으나 1987년 1월 6일 검찰은 "고문 주장은 있지만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로 종결했다. 이는 박종철 군이 고문으로 숨지기 8일 전이었다.

김근태 전 의원과 함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받았던 문용식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은 "남영동 수사팀이 박종철과 김근태를 고문했다. 김근태 의장의 고발을 받아들여 엄정하게 수사하고 단죄했더라면 박종철 고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히려 역으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후 민주화 흐름이 이어지면서 김근태 전 의원의 고문 사건이 재수사 대상이 됐다.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뀐 1988년에야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기소가 이뤄졌고, 이근안이라는 이름도 알려지게 된 것.

하지만 이근안은 박처원의 지시와 도움으로 11년 동안 도피 행각을 벌였다. 박처원은 '1987'에서 구속되는 것으로 끝나지만 실제로는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대공 분야에 헌신했고, 유죄판결 자체만으로도 그간 쌓아올린 공로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는 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박처원은 이후 카지노 업자로부터 10억 원을 챙겨 받고, 이중 일부를 이근안 등 고문 경찰들에 건넸다. 박처원은 범인도피 혐의에도 불구하고 '고령과 당뇨병'을 이유로 또다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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