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의 과학에세이] 모험이 통하는 사회

입력 2017-09-2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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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션’에서는 주인공이 화성에 홀로 남겨지고, 정규 교육과정에서 한 번도 대응법을 학습한 적이 없는 생존의 문제들에 직면하지만, 창의적 발상으로 물을 만들어내고 감자 재배법을 고안해내며 지구와의 통신 방법을 찾아내 결국 살아남는 모습이 나온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가용한 자원을 파악하고 그걸 재료 삼아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과정은 고대 그리스의 유클리드가 기초 공리로부터 논리적 추론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닮았다. 그러니 ‘마션’의 생존능력도 결국 합리적 사유 능력의 결과로 보아 무방하지 않을까.

일자리의 탄생-소멸이 빈번해지는 시대다. 아이들은 사회에 진출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업무를 맡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나마도 몇 번의 일자리 변화를 겪는 게 당연해질 거라고 한다. ‘마션’ 주인공의 생존능력과 혁신가의 소양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핀란드에서 현상기반 학습이라고 불리는 융합 수업을 참관하러 중학교에 간 적이 있다. 아이 하나가 붙임성 있게 얘기를 걸어왔다. 팝음악가가 꿈인 아이였는데,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파리에 다녀오느라 불어를 배웠고, 그러다 보니 5개 국어를 할 줄 안다는, 뭔가 ‘천재’의 냄새가 나는 아이였다. 영어도 잘해서 다른 아이들과 달리 대화 나누기가 쉬웠다.

“컴퓨터 게임 좋아하세요?” “아니, 좋아해 볼 기회를 놓쳤어. 그런 거 없는 시골에 살았거든” “그래요? 그럼 클래시 오브 클랜스(Clash of Clans)도 모르겠네요. 여기서는 다 하는데.”

나오면서 교사에게 그게 뭐냐고 물으니, 핀란드 스타트업 기업이 만들어서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게임이라고 한다. 덧붙이기를, 노키아의 패망 후에 거기서 일하던 젊은이들이 세운 회사인데 크게 성공해서 젊은이들 사이에 창업 붐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고.

그러니까 핀란드에서도 노키아 같은 든든한 울타리가 있을 때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안정된 직장에 만족해하다가, 창업에 뛰어들고 모험을 시작한 후에야 숨겨 있던 재능을 깨닫게 되더라는 말 같았다. 노키아가 이동통신 시장의 흐름을 읽는 데 실패해 휘청거리면서 많은 직원을 내보내야 했을 때, 그냥 현금 전별금을 지급한 게 아니고, 창업 훈련을 시키고 4명이 모여서 창업하는 팀에 10만 유로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 효과가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싶었다.

물론 노키아가 사라진 건 아니고, 네트워크 장비 회사로 탈바꿈해 미래 5세대 통신 시장을 준비하는 회사로 변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핀란드 사람들은, 모든 이가 의지하던 예전 모습의 노키아는 사라진 거라고 느끼는 듯했다.

기존의 대기업 중심 경제가 모험적 창업가가 주도하는 혁신 주도 경제로 이전하는 것은 이렇게 어렵다. 우리 주위에도 ‘마션’의 주인공처럼 창의적 발상으로 무장한 혁신가가 적지 않다. 이들이 거침없이 작동하도록 법적, 제도적 장애물을 걷어내 주고 교육의 변화를 통해 후속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지금 필요한 일 아닐까.

세계 최고 수준의 사전 규제 제도는 법을 만들 때 없던 것은 일단 막고 보는 접근이라서 모험적 시도를 원천봉쇄하곤 한다. 변화의 속도가 이전과 다른 시대다. 액티브 엑스(Active X)를 걷어내는 데 걸린 시간보다는 줄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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