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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돈 이야기] 빗장 푸는 스위스 비밀금고·국내 금융실명제… 커지는 ‘금융 투명성’ 목소리
입력 2017-08-09 10:44   수정 2017-08-09 13:02

1차 세계대전 때 스위스는 정치적 중립을 지켰고 또 가장 안전한 돈과 은행을 갖고 있는 나라로 부각되면서, 유럽 유대인들의 돈이 스위스 은행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스위스 정부는 유대인들이 나치의 탄압을 피해 부동산을 처분한 자금을 안전한 스위스 은행에 예치하기 시작하자 유대인을 돕고 실속도 차리자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에 1934년 은행법을 전면 개정하여 ‘스위스 비밀계좌’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 재산 색출을 위해 고객정보 공개를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대신 유대인으로부터 약탈한 나치 정권의 자금 역시 고객으로 받아들여 양다리 비밀주의를 지켜나갔다.

그런데 스위스는 최근 들어 이 비밀금고의 빗장을 풀기 시작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및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국가들이 금융거래 투명성 제고와 세금범죄 방지를 명분으로 스위스에 은행 비밀주의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미국은 이 과정에서 스위스연방은행(UBS, Union Bank of Switzerland)을 상대로 비밀계좌를 가지고 있는 미국인 고객 5만여 명의 명단 제출을 요구하는 소송을 2009년 제기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스위스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압력에 굴복하면서 이 비밀금고의 빗장을 풀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스위스가 완전히 ‘은행 비밀주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투명한 금융거래를 위해 금융실명제도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금융실명제’란 금융기관과의 거래 시 거래자의 실제명의(실명)로 거래토록 하고, 거래의 비밀을 철저히 보장함으로서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이다. 이를 통해 금융거래가 부정부패·부조리와 연결되는 고리를 차단하고, 아울러 금융자산에 대한 종합과세가 가능하여 공평과세를 이룩하는 데 그 뜻이 있었다. 나아가 지하경제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처음 금융실명제도를 도입한 것은 1993년 8월로, 당시에는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 형식으로 운용되었다. 이후 1997년에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 제정 당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융거래자는 금융기관과의 모든 금융거래에 있어서 가명(假名)이나 차명(借名) 등이 아닌 실명(實名)에 의해 금융거래를 하여야 한다.

또 금융기관은 본인의 요구 또는 동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금융거래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를 타인에게 제공할 수 없다. 그리고 금융회사는 계좌 개설 시 본인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고, 본인이 아닌 경우 위임장이 있어야만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관련 임직원에 대해 제재 조치가 내려진다. 고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했다면 금융회사와 관련 임직원은 가중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당시의 이 금융실명법은 금융기관에 대해서 거래당사자가 본인임을 확인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 금융실명제를 위반하여 계좌를 개설한 사람은 따로 처벌하지 않고 있었다. 이처럼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이어서 그동안 차명에 의한 거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 또한 심각한 수준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대포통장이다. ‘대포통장’이란 제3자 명의를 불법 도용하여 실제 사용자와 명의자가 다른 통장이다. 명의를 도용해 제3자가 통장을 개설한 행위는 금융실명법 위반이지만, 발급된 통장 자체는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이다. 이 때문에 대포통장인지 아닌지 여부를 사전에 확인할 방법은 없다. 명의도용 사실이나 통장을 이용한 범죄 사실이 발각되어 해당 통장이 ‘대포통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알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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