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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세상풍경] 나이를 잘 먹는 연습이 필요하다
입력 2017-05-19 10:39

나이 쉰이 되었을 때 결심한 게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소설로 주는 위안 말고는 절대 삶이나 행동으로 남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자였다.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전혀 감동을 주지 않는 사람이 자기가 남에게 모범이 되고 감동을 주는 줄 알고 계속 그런 척하는 걸 지켜보는 일도 피곤하다. 나는 애초 그런 그릇이 아니니 누구에게 감동 줄 생각을 하지 말자. 대신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는 감동스러운 일을 오래 기억하고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 되자.

그러자면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자고 다짐했다. 이거야말로 매사 그래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그 사람 무뚝뚝하다’가 때로 ‘그 사람 과묵하고 듬직하다’로 해석될 때가 있다. 무뚝뚝하다는 것은 사실 친절하지 않다는 말과 다름없는데, 해석은 이렇게 다르다. 우선 집안에서 친절해야 하고, 밖에서 작품과 일로 부딪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친절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는 사이 10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예순이 되었다. 남들은(내 자식들까지도) 아직 아니라고 위로하지만, 늙기 시작하는 나이다. 이제 늙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 없이 지나간 자신의 30·40대와 비교하면 이미 퍽 나이를 먹은 셈이다.

요즘 들어서는 아무 준비 없이 더 많이 늙기 전에 멋지게 늙고 잘 늙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일들이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이 말과 글을 다스리는 일이라, 특히 세상에 내뱉듯 던져지는 말과 글로 내 자리를 되돌아보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자신을 찾아온 어떤 후보 앞에서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다른 후보를 공개적으로(기자들 앞에서) “빌어먹을 자식”이라고 말한 어느 노인과, 막 취임한 대통령에게 “임기가 끝나도 자살하지 마시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또 다른 한 노인의 모습을 보며 몸으로도 잘 늙고 마음으로도 남에게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예의 바르게 늙는 게 쉬우면서도 참 어렵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우선 그 일이 쉽게 느껴지는 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나는 저렇게는 말하지 않을 것 같은 자신 때문이고, 어렵게 느껴지는 건 저 사람들도 지금 내 나이 때는 정치판의 현역으로 저렇게 특정인을 대놓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 때문이다. 나이 들면 모두 저렇게 되는 것일까. 단지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모두 저렇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노후 학습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인류의 근본적 재앙이 아니겠는가.

단순히 나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은 분별력 부족 때문일 테지만 그렇게 된 데에는 아마도 두 가지쯤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늙어서도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재미에 빠져 더 늙어가는 것에 대한 공부 없이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며 자제력을 잃어간 경우이다. 또 하나는 반대로 나이가 들어가며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곁을 떠나가거나 빠져나가는 영향력과 기품의 빈자리를 노년의 투정과 앙분으로 채우며 그것을 남보다 더 많은 나이의 권리처럼 여겼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주변엔 나이가 들수록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고, 이웃에 친절하고, 세상에 친절한 어른들이 많지 않은가. 나이가 막말의 권리가 되면 그의 늙음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내 노년의 시작 역시 그렇다. 늘 자신을 돌아보며 사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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