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의 지금여기] 총수 참회록과 재벌개혁

입력 2017-04-27 10:50수정 2017-04-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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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1부 차장

최근 출국금지에서 자유의 몸이 된 최태원 SK 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의 경영 행보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반(反)기업 정서 해소에 방점을 찍은 쇄신안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확인된 심상찮은 반기업 정서를 치유하고자 하는 이른바 ‘총수들의 참회록’으로 읽히고 있다.

최 회장은 20일 ‘제2회 사회성과 인센티브 어워드’ 행사를 직접 챙기는 등 사회적 기업들을 격려하는 열정을 보였다. 이날 현장에서는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최 회장을 상대로 SK하이닉스의 도시바 인수전 등 경영 현안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최 회장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사회적 기업 행사) 도시바(인수)보다 더 중요하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인수·합병(M&A)을 통한 경영의 이익 추구보다 나눔을 통한 착한 자본주의의 실현이 중요하다는 경영 철학이 담겼다. 지난달 60년 넘게 이어온 경영 이념을 ‘이윤 추구’에서 ‘고객, 구성원, 사회의 행복 추구’라는 사회적 가치로 바꾼 결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신동빈 롯데 회장 역시 출국금지가 해제된 이후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폐쇄적인 경영 구조와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호텔롯데 상장을 통한 투명경영을 약속한 바 있다. 롯데그룹 상장 계열사인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푸드는 일제히 26일 이사회를 열어 기업분할을 결의했다. 이는 분할된 각각의 투자회사들을 합병해 지주회사인 가칭 롯데홀딩스를 세우기 위한 전초 작업이다.

총수 부재 2개월을 넘기고 있는 삼성 역시 반(反)기업 정서 해소에 나름의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27일 거버넌스위원회를 설립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나섰다.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될 거버넌스위원회는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영 사항의 심의와 주주와의 소통 강화를 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 기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위원회 역할도 병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별로 반기업 정서 해소 방안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심상찮은 반기업 정서를 그대로 둬서는 그룹 쇄신은 물론, 그룹 존립마저 어렵다는 자기반성에 따른 것이다. 더욱이 정치·사회적인 불확실성, 각종 반(反)시장적인 규제로 어려움을 겪어온 터라, 새 정부 출범 이후 불확실할 경영 환경은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불러온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본질을 정경유착으로 지목했다. 재벌들이 정권의 협박에 못 이겨 일방적으로 돈을 뜯긴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지난겨울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재벌 개혁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어쩌면 ‘총수들의 참회록’이 당연하며,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로 전달된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경제공약은 입을 모아 재벌 개혁을 약속하고 있다. 재벌 개혁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노력도 게을리할 수 없다. 재계 역시 반(反)시장 공약에 숨죽여 ‘울며 겨자 먹기’ 식 참회록을 뒤로하고, ‘민심(民心)’이라는 혹독한 심판대를 두려워하는 활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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