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역사(歷史)와 가족사(家族史)

입력 2015-11-03 10:38수정 2015-11-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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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사회경제부장

십여 년 전 기사다. 어느 서울시 고위 간부가 여러 업체와 사람들로부터 몇 십억원 대의 뇌물을 받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이 간부는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되었고, 서울시에서도 파면을 당했다.

지금은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투명해졌지만, 과거 서울시는 ‘복마전(伏魔殿)’으로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복마전은 ‘수호지(水滸誌)’에 나오는 말로서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악의 근거지라는 말이다.

복마전이라는 표현은 서울시의 악명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된 이 간부의 재판이 열린 법정이었다. 그의 딸이 법정에서 재판부를 향해 선처를 호소했다.

“저희 아버지는 집안에서 자상하기 이를 데 없고, 늘 부지런히 돈을 모아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린 좋은 아버지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우리 아버지가 왜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수억원도 아닌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아 부를 축적한 그는 좋은 남편이었고, 좋은 아버지였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환경을 만들었고,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자상한 아버지였을 게다. 좋은 집에, 좋은 외제차도 몰고 다니면서 자식들 교육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절대 나쁜 사람일 수는 없었을 게다.

물론 그의 딸 입장에서만 그렇다.

그러나 한 집안을 일으키며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였던 그는 ‘공동체(共同體)’에서는 복마전의 핵심이었다. 공동체에 나쁜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고, 결국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오랫동안 교도소 생활을 해야 했다.

역사(歷史)는 결코 가족사(家族史)가 아니다. 가족사(家族史)가 역사(歷史)의 일부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공동체에 어떤 좋은, 혹은 나쁜 영향을 미쳤을 때에만 역사가 된다. 왜냐. 역사는 공동체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집단의 기억이고, 집단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다양한 평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다양한 평가와 논쟁이 형식논리적으로 혹은 숫적으로 수평적이거나 대등할 수도 없다. 그래서 편향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논쟁은 사라질 수 없다. 편향은 기록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쪽 일방의 주장일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혈육, 지인, 친구, 동료의 편에 설 수 있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심성일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기록은 그러한 주관적 영역을 벗어난다.

아직 서술되지 않은 역사책을 갖고 왈가불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헌법을 지키는 선에서 합의는 해놓고 갈 필요는 있을 것이다. 역사책이 국정화가 되든, 검인정을 유지하든, 아니면 검인정도 폐지하고 완전 자유제로 가든 헌법 전문을 지키자는 약속은 하자. 그게 진짜 애국자의 길이다.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건국절 논쟁은 헌법을 무시하는 발로다.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이승만 독재정권을 축출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부일 수 없다.

헌법 제1조에 의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는 그냥 쿠데타이지 혁명이 아니다.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충분히 합의할 수 있다. 더구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인 만큼 헌법에 충성을 다할 의무가 있다.

내게 좋은 아버지라고 하여 공동체에도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것은 공동체에 끼친 영향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고, 공동체의 기록과 평가에 의할 뿐이다.

이게 싫으면 그냥 가족사나 쓰면 된다. 그러고 보니 헌법을 고치려 들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정말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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