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 ‘사법시험 폐지’ 앞둔 사법연수원 풍경

입력 2015-08-2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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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실무강좌 듣고 인턴 실습…10명중 1명꼴 “해외연수 스펙”

지난 12일 오전 10시, 사법연수원 기숙사동 밖으로 반바지 차림의 연수생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하얀 팔다리 위로 나무 그림자가 얼룩졌다. “어딜 가느냐”고 물었더니 “서해로 간다”고 했다. 개학을 5일 앞둔 1년 차 연수생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였다.

5일 뒤 어렵게 2년 차 연수생 자치회장을 맡고 있는 한석현(45기) 씨와 동기인 김초롱 씨를 만날 수 있었다. 한씨는 올해 자치회 차원에서 ‘취업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공공기관과 중·소형로펌, 사내 변호사, 개업 등 4개 분야로 구성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있기보다는 자치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보자는 취지다.

변호사 2만명 시대를 맞아 가장 먼저 변한 것은 연수원이었다. 연수생 대부분이 수료 후 변호사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연수원은 대대적인 제도 개편에 나섰다. ‘특별변호사 실무’ 과목을 신설하는 등 변호사 실무교육을 확대했고, 변호사 인턴제도도 강화했다. 국민권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대체 실무수습이 가능한 기관을 발굴해 다양한 직업군을 모색하는 데도 앞장섰다.

연수생 간의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연수원 38기 출신의 법제관을 아내로 둔 한씨는 “아내가 연수생이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경쟁이 훨씬 심해졌다”고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연수생들 눈에 불꽃이 튀는 게 보인다”는 게 그의 표현이다.

김씨 역시 “사회적 분위기나 상황이 연수생을 괜히 움츠러들게 한다”며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뿐”이라고 말했다. 가장 힘든 점은 역시 연수생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다.

김씨는 “여기는 전교 1등 안 해본 애들 없고, 동네에서 이름 안 날려본 애들이 없다. 진짜 ’선수‘들이 모여 진검승부를 하다 보니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또 그는 “모두 이겨내고 취업해도 무지막지한 업무가 기다리고 있다”면서 “결혼과 임신·출산을 앞둔 여성으로서는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활로를 해외에서 찾아 베트남 연수를 준비 중이다. “세계를 보면 대사관이나 영사관, 외국계 로펌이나 회사 변호사, 국내 로펌이나 회사의 외국 지사 변호사 등 직종이 다양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실제 올해 연수원을 수료한 44기를 보면 총 55명의 연수생이 해외 25개 기관에서 연수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연수생 509명 중 약 10%가량이 수료 전 해외 경험을 쌓은 것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한국에서 취업해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리며 소장이나 답변서를 쓰기보다는 외국에 나가서 UN 등 의미 있는 일을 찾는 연수생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11시, 개학을 맞은 사법연수원 도서관에는 늦은 밤까지 연수생들이 떠나지 않았다. 인근 독서실 ‘신녹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보통 새벽 2시까지 책을 붙잡고 잠들었다. 5시간 정도 자고 나면 아침 7시부터 다시 아침 스터디가 시작됐다. 김씨의 말처럼 그야말로 “할 수 있는 건 공부뿐”이었다. 기존 연수생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들은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전통적인 직업 외에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물색했다. 2017년 사법시험 폐지를 앞두고 연수원도, 연수생도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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