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광고로 보는 경제] 지금과 8388배의 격차…너희가 486 PC를 아느냐
입력 2019-02-22 11:10

▲1994년 한 청소년 잡지의 컴퓨터 광고.

1994년 어느 청소년 잡지의 광고.

엑스터 486 DX2-50 멀티미디어 PC 138만 원

제우정보라는 전자업체에서 만든 개인용 컴퓨터(PC)다.

여성 모델이 들고 있는 컴퓨터와 모니터, 저거 상당히 무거운 물건이다. 기자가 여성은 힘이 약하다는 편견이 있는 게 아니라, 30대 남자인 기자도 저렇게 들 자신이 전혀 없다. 무거운 것도 정말 엄청나게 무거운데, 그건 둘째 치고 저렇게 들면 모니터가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아마 콤팩트한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날씬한 여성이 PC를 어깨에 ‘가볍게’ 짊어진 모습을 실은 것 같은데, 암만 봐도 무리수다.

이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금까지 컴퓨터를 구입하지 않으신 분들은 정말 잘하셨다’는데. 대체 얼마나 좋은 제품이기에….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486 PC란

지금의 386이란 숫자는 30대(시간이 지나면서 현재는 40~50대로 의미가 바뀜) 후반,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인 민주화 운동 세대를 의미한다. 원래는 1990년대를 풍미한 CPU 기종의 한 시리즈를 일컫는 이 단어는 ‘구형 컴퓨터’ 같은 낡은 세대라는 의미로 차용되며 널리 쓰이게 됐다.

인텔은 1978년 ‘x86시리즈’라고 불리는 CPU의 첫 작품인 ‘인텔 8086’을 선보인다. 이후 인텔은 이 CPU의 후속시리즈에 ‘80186’, ‘80286’ 등의 이름을 붙여 출시했다. x86이라는 이름은 86 앞에 숫자가 하나씩 늘어나는 네이밍에서 유래했다.

x86시리즈는 ‘80386’에 이르러 기존 시리즈보다 성능이 크게 향상됐고 본격적인 PC의 시대를 연다. 바로 그 유명한 386 PC다. 광고의 엑스터는 그 바로 다음 세대인 486 PC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 250MB,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 2개, 램 4MB…

486 PC인 '엑스터'의 사양을 살펴보자. 먼저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줄여서 HDD, 용량은 250MB. 250메가바이트! 램(RAM)은 4MB. 4메가바이트다. FDD는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를 뜻한다. 2개라는건 두 개의 플로피디스크를 삽입할 수 있다는 의미. 장난치는 게 아니라 이런 제품은 이제 정말로 박물관에서 밖에 볼 수 없다.

의아하게도 사양에 그래픽카드는 아예 명시조차 돼 있질 않다. 내장형 그래픽카드라서? 아니다. 그래픽카드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서 그렇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그래픽카드인 ‘지포스’의 시초 격인 ‘NV1’ 칩셋은 1995년 9월 첫 출시되며 3D 그래픽 시대를 열었다. 그 전에는 ISA나 VESA 방식의 2D 그래픽카드(주로 Tseng Labs 칩셋)를 내장했다. 그래픽 규격(해상도나 컬러 수)이 중요했을 뿐, 성능은 그게 그거여서 구입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는 도스(DOS) 운영체제 시절엔 그래픽 작업이라고 부를만한 시각물 자체가 굉장히 없던 시절이기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운드카드의 성능을 강조한 문구가 많다.

▲최근 다나와에서 가장 있기 있는 하드디스크와 램의 상품정보. 용량도 용량인데 저렴해진 가격도 눈에 띈다. (출처=다나와)

◇무려 8000배의 용량 차이

현재의 PC와 비교해보자. 요즘엔 일체형보다 조립식 PC가 대세니 부품별로 알아보자.

온라인 가격비교 서비스 ‘다나와’에서 가장 인기 있는 PC용 HDD는 ‘시게이트 2TB 바라쿠다 ST2000DM008'이라는 제품이다. 이름에 2TB가 써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저장용량은 2TB. 2TB는 MB 단위로 환산하면 209만7152MB에 해당한다. 광고의 엑스터 컴퓨터의 저장용량과 약 8388배 차이난다.

‘다나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램은 ‘게일 DDR4 8G PC4-21300 CL19 PRISTINE‘인데, 역시 이름에서부터 용량이 8GB라고 명시돼 있다. 8GB는 환산하면 8192MB. 위의 엑스터 PC와 비교할 때 2048배 늘어났다.

▲다나와에서 오버워치 최상옵션을 기준으로 내본 PC 견적. 100만원이 채 안 된다. (출처=다나와)

엑스터의 가격은 본체만 138만 원. 모니터는 23만 원. 합치면 151만 원인데, 부가세는 별도이므로 이 것까지 계산하면 총 166만 원 되시겠다. 지금 용산전자상가에 가서 견적을 짜면 오버워치 풀옵션으로 돌릴 수 있는 컴퓨터를 사도 본체 가격이 1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시 물가를 감안하면 이 때의 돈은 지금의 3~5배의 가치를 지녔다고 계산해야 합당하다.

대략 추산해 보면 지금의 수천 분의 일에 해당하는 성능의 PC지금의 4~5배에 달하는 돈을 내고 구입해야 했다. 이유는 아시다시피 집적회로의 기술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평범한 스마트폰의 성능이 아폴로 프로젝트 당시 사용되던 나사 슈퍼컴퓨터보다도 좋다.

여담으로 ‘지금까지 컴퓨터를 구입하지 않으신 분- 정말 잘 하셨습니다.’라는 문구는 곱씹어보면 좀 웃긴다. ‘엑스터 486’ PC가 나왔으니 이전의 성능이 떨어지는 컴퓨터를 안 산게 잘한 선택이라는 논리다. 그런 식이라면 다음에 나올 더 저렴하고 성능 뛰어난 모델을 기다리느라 컴퓨터를 살 최적 시기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할 수가 없다. ‘제논의 역설’을 보는 듯하다.

▲교육이라는 단일 마케팅 포인트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 금성사의 PC 광고.

◇시대를 넘어서는 마케팅 치트키…‘애들 공부에 도움돼요!’

PC가 보급되던 1990년대 중반이다. 시장의 무한경쟁 속에서 제조업체들은 대한민국 재화 시장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먹혀 온 만능 치트키를 앞다퉈 사용한다. 바로 ‘교육’이다.

사진의 금성 컴퓨터를 만든 금성사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LG전자의 전신이다. ‘문교부 인증 PC’, ‘16비트 교육용 PC’, ‘교육용 컴퓨터 품질능력평가’, ‘중학교용 국어/영어/수학/사회/생물/물상, 국민학교용 산수 등의 탁월하고 완벽한 학습용 소프트웨어’ 등…. 사실상 세일즈포인트를 ‘교육’ 하나로 몰빵한 모습이다.

▲'인컴'이라는 이름의 PC통신 서비스 광고.

이 광고는 컴퓨터는 아니고 PC통신 서비스지만 소개해본다. ‘인컴’이라는 인터넷 강의 서비스다. 당시 PC 성능과 통신망 수준으론 영상 구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의 인강처럼 강사의 강의를 영상으로 시청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간단한 국어‧영어‧수학‧사회‧자연 문제를 PC를 통해 풀어보는 시스템인 듯하다.

얼핏 보면 교육 전용 서비스 같지만 엄연히 ‘종합정보통신서비스’다. 그러니까 e메일, 채팅, 게임, 자료 다운로드 등의 서비스 메인 콘텐츠인 ‘교육’의 부가서비스로 나온 것이다. ‘교육’이란 글자가 마케팅에서 갖는 위력을 실감케 한다.

이게 그렇게 먼 옛날의 진풍경이 아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치트키라고 이름 붙인 게 괜한 소리가 아니다. 지금이 더 심하면 심하지 덜 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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