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광고로 보는 경제] "성장클리닉 왜 가?" 30년 전엔...돈 만원이면 키도 커지고, 코도 세웠다
입력 2019-01-28 17:50

▲1980년대 말의 어느 잡지광고. 가운데 붉은 네모 친 광고에 주목하자.

1980년대 말 어느 잡지 광고

‘키크는 뉴·HY신장기’

‘운동기구 종합 제조원’이라고 밝힌 코모상사라는 업체에서 판매한 미용기구들의 광고다. 가운데에 위치한 유독 흥미를 자아내는 광고 하나가 눈에 띈다.

‘키 작은 분에게 기쁜 선물’, ‘의학적으로 증명된 뉴·HY신장기는 여러분의 키를 해결해 줄 것입니다.’ 와! 세상에 저 당시에 저런 제품이 있었다고? 자세히 살펴보자.

◇다리를 잡아 늘이고, 무릎에 전기 자극을 주면…!

사실은 살펴볼 만한 내용이 많지는 않다. 우선 이 코모상사라는 기업은 현존하는 회사가 아니다. 검색 결과 동명의 업체가 잡히긴 하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업체인 것으로 보아 뒷날 새로 생긴 우연히 이름이 같은 회사로 추정된다. 때문에 광고에 나온 내용으로만 상품의 정보를 유추해야 한다.

일단 이 제품은 사용하면 키가 크게 해준다고 광고하는 제품이다. 이름부터가 ‘키크는 뉴·HY신장기’이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빼도 박도 못 한다.

▲키크는 뉴·HY신장기에 코드를 꼽고(1), 전기로 무릎에 자극을 주면서(2), 벽에 연결된 줄로 다리를 잡아당기면(3) 키가 큰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증명'됐다는 설명도 있다.

그림을 보고 원리를 추측해보자. 전기장판과 비슷하게 생긴 기구에 달린 전기줄을 콘센트에 꼽았다. 전기장판은 전열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제품이지만, 이 제품은 전기로 무릎에 자극을 준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무릎 관절을 자극해 키를 크게 하는 작동방식인 듯하다.

이것만으론 부족한지 발에도 무언가를 달아놨다. 이번엔 콘센트가 아닌 그냥 벽에 고리 같은 것을 걸어 발에 줄로 연결해뒀다. 예상컨대 스프링이나 고무 같은 탄성이 있는 줄로 연결한 듯하다.

정가는 1만3500원. 광고가 실린 1989년의 기사를 보면 당시 국내 도시근로자의 월평균 가구 소득은 74만4400원이라고 한다. 근로자 평균 소득의 약 1.8%에 해당하는 상품이다. 지난해 중순경 국내 노동자 월평균 임금이 255만8000원이라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약 4만6390원에 상당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요약하면 지금 돈 4만6000원 정도로 무릎에 전기자극을 주는 동시에 발 쪽을 잡아당기는 것을 반복해 조금씩 키가 커지는 기구다.

언뜻 믿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이 제품의 효능을 믿어야 한다. 믿어야 할 이유가 있다. ‘의학적으로 증명’됐다는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의학의 어느 분야인지, 어느 나라, 어디 병원, 어떤 의학박사의 어떤 방식의 입증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의학적으로 증명됐다고 한다.

설마 광고까지 하는 제품이 거짓말이야 했겠는가. 의학적으로 입증했다고 하니, 믿고 쓰다 보면 어느새 키가 클 것이다. 아, 옛날 사람들은 좋겠다. 나도 저 제품 팔 때 태어날 걸….

◇그럴 리가 있나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무릎에 전기자극 좀 주고, 벽에 줄 걸고 다리 좀 당겼다고 해서 키가 쑥쑥, 아니 단 몇 mm라도 커질 리가 없다.

그게 그렇게 저렴하게, 너무나 쉽게 되는 일이었다면 FC바르셀로나가 유스팀 유망주 리오넬 메시에게 거액을 지원해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히기보다 ‘키크는 뉴·HY신장기’ 1대를 사줬을 것이다. 또, 이 세상에 유명 연예인 중에 키가 작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당연히 이 제품을 통해 키가 180이 넘을…아니, 기자 말고도 대부분의 키 작은 사람들이 이 제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만약 이 제품의 효능이 진실이었다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아도 모자랄 만큼의 엄청난 대발견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엄청난 기능을 지닌 제품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효능에 대한 신뢰가 확 떨어진다.

▲옆에 같이 실린 미용기구 '뷰티노우즈'의 광고. 사진이 뚜렷하지가 않지만, 코에 무엇인가 붙인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외과적인 시술은 아닌 것 같고 코에 무엇인가를 붙이는 상품인 듯 하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업체의 문제가 많은 광고다. 오른쪽 아래의 ‘뷰티노우즈’는 코를 예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광고만 봐서는 정확히 파악이 어렵긴 한데, 코에 무엇인가 붙이는 제품인 것 같다.

키크는 제품과 별 차이가 없다. 만약에 현재 가격 5만 원 정도의 코에 붙이는 제품으로 외과시술 없이 예쁜 코가 될 것 같으면, 강남에 셀 수 없이 많이 늘어선 성형외과들의 영업이 가능할 턱이 없다.

기자가 일곱, 여덟살쯤 되던 시절에 엄마가 “남자는 코가 높아야 잘생겨 보여”라면서 콧대를 자주 꼬집어 세워주려고 하셨다. 만약 이 제품에 효능이 있었다면 기자는 지금쯤 박보검 같은 코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면 무리수지만, 아무튼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상품이다.

1980년대엔 이런 상품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정말 옛날 사람들은 상식이 부족해서 말도 안 되는 걸 덥석 잘 믿었던 것일까?

◇그때도 있고, 지금도 있다

아니다. 아주 최근까지도 ‘키크는 상품’이라고 과장 광고를 하다가 적발된 사례들이 있다.

2016년 보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키 성장 효과에 관련해 거짓 또는 과장 광고를 한 8개 업체에 대해 시정 조치하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30년 전이 아니라 불과 3년 전인 2016년이다.

▲2016년 2월의 방송기사 보도. 3년 전에도 키가 큰다는 내용으로 과장광고를 하다가 적발된 업체들이 있었다. (출처=SBS뉴스 캡처)

단순한 영양제를 먹으면 키가 커진다고 과장한다거나, 스트레칭 효과가 있는 운동기구를 사용하면 키가 커진다는 식의 허위 광고를 게재한 것이 적발된 것이다.

이런 제품들이 특허라는 이름으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사에 나와 있다시피 키 크는 효과와는 무관한 내용의 특허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시정조치와 과징금 처분을 받은 업체들은 제품 광고에서 성장과 직접적인 관련을 밝힌 문구들을 모두 삭제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암암리에 확실히 키가 큰다는 내용의 과장 광고를 하는 다른 제품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기자는 확실히 그런 제품들을 어디선가 팔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난 30년간, 아니 몇백 년간 키 크는 비결이라고 전수된 방법 내지는 상품들은 존재해 왔을 것이다. 왜냐? 인간은 항상 큰 키를 작은 키보다 선호해 왔으니까.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세계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17세기의 파스칼이 말했다고 하니, 높은 코도 인류 역사상 지속적으로 사랑받아 온 매력 포인트였나보다. 그러니 분명 그 먼 옛날에서부터 코를 높여준다는 1989년의 ‘뷰티노우즈’ 같은 상품도 존재해왔을 것이다.

붙이고 있으면 몸속의 노폐물을 빼준다는 상품, 사용하면 이성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해 준다는 상품, 식사 후 약만 삼켜도 운동 없이 살을 빼준다는 상품, 착용 시 특정 부위를 보다 크게…. 아무튼 세상엔 이런 종류의 상품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어리숙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있어왔고, 있으며, 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제품이 진짠지 판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엄청난 고가인 것도 아닌 저 제품들이 그렇게 효과가 좋다면, 세상에 키가 작은 사람, 코가 낮은 사람, 몸에 노폐물 있는 사람, 이성에게 인기 없는 사람, 비만인 사람, 특정 부위에 그…콤플렉스를 지닌 사람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기자 역시 위에 나온 콤플렉스들 중 무엇인가에 해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절박한 마음을 전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허위광고 상품을 구매하기 전에 다시 딱 한 번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누구나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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