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강세에 자금 유출…외국인 12월 2.9조 순매도
원·달러 환율 1% 상승시 제조 중기 환차손 0.36% ↑
“저항이 없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약세를 거듭해 장중 1500원 선도 위협하는 모습을 보고 서울외환시장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금융위기 수준으로 한국 화폐 가치가 추락하면서 국내 증시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기업 실적 악화와 외국인 이탈 가속화 우려에 내년에도 불안한 시장환경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29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 180원 넘게 급등했고, 이중 절반에 가까운 80원이 최근 한 달 동안 상승했다. 27일에는 장중 1480원을 돌파했다. 2009년 금융위기(3월 16일 1488원) 이후 최고치다. 불편한 환율이 계속되면서 코스피 지수도 한 달 동안 4.59%(115.59포인트) 하락했다.
달러 강세를 따라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가뜩이나 연말을 맞아 수급이 얇은 국내 증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외국인 투자자는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12월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2조9000억 원가량 팔며 5개월 연속 순매도세를 나타냈다.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팔아 얻은 원화를 통상 안전자산인 달러로 바꿔 보유한다. 이 과정에서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가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는 절하되면서 환율이 더욱 상승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원·달러 환율이 1310원대에서 1590원대까지 치솟자(2009년 1월~3월 6일) 코스피 지수는 약 6% 하락했고,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1조 원 가까이 팔아치웠다.
원화 약세는 상장기업들의 실적 불확실성도 높인다. 특히 환율에 민감한 제조 중소기업의 타격이 크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환헷지 전략을 실행할 여력이 부족해 환율 급변에 더욱 취약하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하면 제조 중소기업의 환차손은 약 0.3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제조업 10곳 중 4곳 이상은 영업이익으로 이자 내기도 버겁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2월 결산 제조업 관련 상장기업 1715곳 중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하(3분기 누적기준)인 기업은 746곳(43.5%)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원·달러 환율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국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일부 수출 기업을 제외하고 해외에서 원자재를 들여오는 기업들은 비용 부담에 노출되므로, 한국에서 가공해야 하는 기업들의 실적은 전반적으로 악화할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원·달러 환율이 진정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협회가 국내 채권 관련 종사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9%는 다음 달 원·달러 환율 상승을 전망했다. 이는 전월(21%)보다 상승한 수치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과거 금융위기 이후 평균적인 저점 대비 상승률을 적용한 원·달러 환율 상단은 내년 초 기준 1490원대로 산출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