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톡!] 연구노트 작성의 법적 강제

입력 2020-11-0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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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환구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1959년에 미국 반도체회사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가 반도체 집적회로를 특허로 출원하였다. 그런데 몇 달 뒤,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로버트 노이스도 반도체 집적회로로 특허출원을 하더니 1961년에 먼저 등록받았다. 1964년이 되어서야 특허등록증을 받게 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나중 출원한 페어차일드의 발명에 주어진 특허가 잘못된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미국 특허법은 선발명주의를 취하고 있었다. 넓은 미국 땅에서 누가 먼저 특허청에 왔는지를 따지는 것보다는, 최초 발명자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 수단은 연구노트였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실험결과가 나왔을 때 대부분의 발명자는 그 내용을 정리해 두기 때문이다. 연구노트를 비교해 보았더니 발명의 착상 시점도 선출원자인 킬비가 빨랐지만, 양 발명의 기술적 차이도 함께 인정되었다. 결국 두 특허 모두 등록되는 데 문제가 없음이 밝혀졌다.

발명이 특허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새로워야 하고 앞선 기술로부터 쉽게 발명할 수 없어야 한다. 발명 참여자가 많고 기술이 고도해지면서 이를 따지는 과정도 점점 더 복잡해지는데, 연구노트의 위조 여부까지 가려야 하는 선발명주의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특허권에 독점권을 주는 취지는 발명 공개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므로, 미국 빼고는 대부분 특허출원을 통해 먼저 공개한 사람을 보호하는 선출원제도 국가였다. 결국 미국도 2013년부터 전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선발명주의를 선출원주의로 바꾸었다.

그렇다고 연구노트의 의미가 덩달아 축소되지는 않는다. 연구노트가 법적증거로 쓰일 때는 ‘연구수행의 시작부터 연구개발결과물의 보고, 발표 또는 지식재산권의 확보 등에 이르기까지의 연구과정 및 연구성과를 기록한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훈령)’이지만, 연구자에게는 일기와 같은 소중한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는 국가연구비를 지원받은 모든 연구자에게 연구노트를 작성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연구개발과제의 성실 수행’을 증명하는 자료라는 것인데, 종전 ‘과학기술기본법’의 시행령인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있던 내용을 법률규정으로 올린 것이다.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포함한 모든 연구과제의 성실수행을 연구노트로 확인하겠다니, 권위주의 시절 학교의 일기장 검사를 연상시킨다. 개정이 필요하다.문환구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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