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골 드러낸 재킷·빨간 원피스 논란…정치보다 옷으로 평가받는 여자정치인

입력 2020-10-22 16:50수정 2020-10-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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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빨간 원피스‘·산나 마린 ‘가슴골 드러낸 재킷’
세계 각국 여성 정치인의 옷을 둘러싼 논란

▲산나 마린 총리의 화보 의상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핀란드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출처=트렌디 SNS 캡처)

8월 4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 빨간 원피스 차림으로 등장해 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들었다. 온라인상에서는 부적절함을 비판하는 내용을 넘어 성희롱성 댓글까지 달렸다.

여성 정치인의 옷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세계 각국의 여성 정치인은 남성보다 훨씬 자주 '무엇을 입었는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정치인도 있었다. 미국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중요한 자리마다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브로치를 착용해 '브로치 정치'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대개 여성 정치인의 옷을 둘러싼 논란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다.

▲8월 4일 류호정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등장해 의상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핀란드 패션 잡지 트렌디(Trendi)는 SNS에 산나 마린 총리의 패션 화보를 게재했다. 마린 총리는 지난해 34세의 나이로 총리직에 올라 세계 최연소 총리가 됐다. 사진 속 마린 총리는 가슴골을 드러낸 채 화려한 목걸이를 착용했는데, 국가 지도자로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마린 총리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컸다. SNS상에서는 '산나 마린을 지지한다'는 뜻의 #Imwithsanna 해시태그와 함께 산나 마린과 비슷한 옷을 입은 여성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트렌디 편집장 마리 카리스카스는 16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 속 스타일은 지난 몇 년간 패션계와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했던 스타일"이라며 사진을 둘러싼 논란이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이탈리아 테레사 벨라노바 장관이 취임식에서 홀로 파란 드레스를 입어 의상 논란에 휩싸였다. (EPA/연합뉴스)

테레사 벨라노바 이탈리아 농림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취임하자마자 의상 논란에 휩싸였다. 벨라노바 장관은 15세에 학교를 떠나 농장 노동자로 일하며 평생 노동 운동을 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농장 노동자 인권을 위해 헌신한 경력을 인정받아 중졸 학력에도 장관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9월 11일 벨라노바 장관은 취임식에서 파란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모두가 무채색 양복을 입었던 터라 눈에 띄는 파란 원피스는 격식 논란을 일으켰다. 다니엘레 카페초네 이탈리아 전 하원의원은 벨라노바 장관의 사진을 두고 "카니발? 핼러윈?"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하지만 현지 언론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은 벨라노바 장관 지지 의사를 밝혔고, 카페초네 전 의원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연방 하원의원이 7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밀레니얼 정치인의 대표 주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역시 옷으로 인해 자주 세간에 오르내렸다. 푸에르토리코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018년 11월 뉴욕 제14구 선거구 하원의원에 당선돼, 29세의 나이로 미국 최연소 하원의원이 됐다.

그가 당선된 직후, 미국의 보수 정치 평론가 에디 스카리는 오카시오코르테스가 하이힐을 신고 치마를 입은 채 복도를 걸어가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다. 그는 오카시오코르테스의 패션을 두고 "저 재킷과 코트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여성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트위터에 올렸다가 비판을 받고 삭제했다.

▲미국 보수 정치 평론가 에디 스카리는 오카시오의 옷을 두고 '그가 입은 재킷과 코트는 열심히 일하는 여성 같지 않아보인다'라는 글을 남겼다가 비판을 받고 삭제했다. (출처=에디 스카리 트위터 캡처)

여성 정치인의 옷에 관한 관심은 여성이 처음 정치에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최초 여성 하원의원인 재닛 랭킨은 1916년 11월 당선돼 그 이듬해 첫 임기를 시작했다. 당시 언론은 그의 정치 행보보다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주로 다뤘다. 그중 1917년 3월 4일 워싱턴포스트 기사 제목은 '첫 여성 하원의원 재닛 랭킨은 진짜 숙녀답다; 멋진 가운과 깔끔한 머리를 좋아한다'(Congresswoman Rankin Real Girl; Likes Nice Gowns and Tidy Hair)였다. 기사 내용 역시 그의 의정활동보다 취미 생활, 외모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랭킨이 당선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성 정치인이 '무엇을 입는지' 지나치게 몰두한다. 원피스 논란이 있던 다음 날, 류호정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옷보다 의정활동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은 여전히 그의 원피스를 파고들었다. 결국 류 의원은 의상 논란이 있고 며칠 뒤 "아직도 원피스를 묻는 기자가 있다"며 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류 의원은 눈에 띄는 의정 활동을 하며, 옷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조금씩 거둬갔다. 국정감사에서는 삼성 임원이 기자증으로 국회를 출입한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삼성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의혹을 파고들어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가 넘어야 할 산은 옷에 대한 그릇된 시선만이 아니었다.

19일 류 의원은 국정감사 도중 채용 최창희 공영홈쇼핑 대표에게 "어이"라는 말을 들었다. 공영홈쇼핑 채용 과정에서 부정 채용이 있었다는 의혹 제기를 하면서다. 최창희 대표는 혼잣말이라 해명했지만, 과연 그가 중년의 남자였다면 "어이"라는 혼잣말이 튀어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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