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김진경 빅밸류 대표 "빌라도 제값 받아야죠…빅데이터로 시세 사각지대 해소"

입력 2020-09-14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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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빌라ㆍ나홀로아파트 시세 분석 서비스 개발…믿을 만한 데이터로 은행에 인정받아

▲서울 중구 태평로 사무실에서 만난 김진경 빅밸류 대표는 "부동산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부동산 금융 혁신을 이루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사진 제공 빅밸류)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 그 중에서도 '대단지 아파트 공화국'이다. 흔히 빌라로 불리는 연립ㆍ다세대주택이나 '나홀로 아파트'로 통하는 소형 아파트 단지는 주택시장에서 소외돼 있다. 주택 관련 대출을 받으려 해도 제값을 받기가 쉽지 않다. 시장이 대형 아파트 중심으로 구축돼 있다 보니 빌라나 나홀로 아파트는 시세를 평가할 정보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에서 프롭테크 창업자로

김진경 대표가 2015년 창업한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인 '빅밸류'는 이 빈틈을 공략하고 있다. 각 기관에서 수집한 1000개 이상 데이터 속성을 바탕으로 빌라와 나홀로 아파트 시세 산정 알고리즘 솔루션을 만들었다.

현재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농협중앙회 등 주택 관련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권에 이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 기관도 주택 가치를 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빅밸류의 틈새 전략이 은행이 가려워하던 부분에 적중했다.

김 대표는 법조계와 증권업계, 스타트업계 등 여러 분야에서 이력을 쌓았다. 그때마다 부동산과 인연이 이어졌다. 김 대표가 변호사로 일했던 법무법인은 부동산 소송 특화 사무소였고 증권사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자산 유동화, 구조화 금융 등 부동산 금융 업무를 맡았다.

다양한 경험은 김 대표가 빅밸류를 이끄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프롭테크(정보기술을 결합한 부동산 서비스산업)는 부동산도 알고 금융, 정보기술(IT)도 알아야 해서 창업이 힘든데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게 창업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부동산 금융을 담당하는 동안 김 대표에겐 마뜩잖은 부분이 생겼다. 그는 "부동산 금융 현장에서 일하며 느꼈던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 소비자의 불편이었다"고 말했다. 정보가 비대칭적이다 보니 자산 가치를 산정하고 그에 맞는 금융 상품을 개발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핀테크(IT 기술과 금융 간 결합)' 바람이 불고 정부가 데이터 개방을 확대하면서 김 대표는 직장 동료들과 창업을 결심했다.

정보 불균형, 서민 자산 가치 저평가ㆍ금융 비용 상승으로

김 대표가 처음부터 빌라나 나홀로 아파트 시세 분석을 구상했던 건 아니다. 처음엔 자산관리서비스를 고민했지만 자산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 검토하는 과정에서 틈새시장이 보였다.

김 대표는 "국내 주택의 60%에 달하는 연립ㆍ다세대주택과 40가구 미만 나홀로 아파트에 대한 시세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고 있었고, 이들 주택은 가치에 대한 평가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며 "상대적으로 서민 주택으로 분류되는 연립ㆍ다세대주택은 정보 불균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고, 이게 서민들의 자산 가치 저평가와 금융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는 원인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빅밸류는 주택 가치를 정확하게 매길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데 매달렸다. 그 결과 2017년 연립ㆍ다세대주택 시세 정보 시스템인 '로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이듬해엔 '케이앤컴퍼니'였던 사명(社名)도 지금의 것으로 바꿨다. 김 대표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밸류에이션(가치 평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사회에 커다란 가치를 주겠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사업 초창기에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기술력으로 넘긴 데스밸리

스타트업의 고민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려면 그 상품을 팔아야 한다. 빅밸류도 같은 고민을 거쳤다. 서비스 공급을 위해 이 은행 저 은행은 찾았지만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사업 초기 사업계획서를 들고 투자 미팅을 다녔지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당시에는 투자 유치는커녕 서비스 시연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창업 초기 겪었던 어려움을 이렇게 떠올렸다. 빅밸류는 그럼에도 은행 문을 계속해 두들겼다. 김 대표는 "부동산은 신뢰가 산업"이라며 "진입 장벽은 높이만 데이터에 관한 관심이 많고 관련 인프라도 갖춰진 대형 은행과 첫 계약을 맺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빅밸류는 기술력으로 '죽음의 계곡'(데스밸리ㆍ창업 후 자금 마련이나 시장 진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을 넘겼다. 김 대표는 "은행 내 여러 부서와 만나면서 빅밸류가 가진 데이터와 관련 기술력을 보여주고 은행이 가진 데이터와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 '신뢰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층수와 평형, 대중교통 접근성과 주차장 유무와도 같은 수많은 정보를 반영해 시세를 산정한다"며 "높은 신뢰도와 정확도를 확보하기 위해 창업 이후 지금까지 빅데이터 및 AI 알고리즘 개발과 관련한 특허도 다섯 개 취득했다"며 빅밸류 알고리즘을 자랑했다.

기술력이 입증되자 2018년 신한은행을 시작으로 주요 시중은행들이 빅밸류에게 잇달아 손을 내밀었다. 같은 해엔 금융위원회에서 '지정대리인'으로도 지정됐다. 지정대리인은 금융회사의 핵심 금융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다. 민관 모두 빅밸류의 기술력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고객이 늘면서 경영 성과도 개선됐다. 2018년 9716만 원이던 빅밸류 매출은 지난해 5억5581만 원으로 다섯 배 넘게 늘었다.

프롭테크 경쟁자도 늘고 있지만 김 대표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빅밸류는 데이터 수집, 가공 능력이 장점이고 특허를 통해 이를 입증하고 있다"며 "빅데이터를 갖고 시세 알고리즘을 산출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기술 기반 진입 장벽이 있다보니 경쟁자는 한 두 곳 정도"라고 말했다.

새로운 기회와 갈등

최근 규제 개선 흐름은 빅밸류에 기회이자 위기다. 국회는 연초 비식별화한 개인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ㆍ신용정보법ㆍ정보통신망법)을 마련했다. 김 대표는 "데이터 수집ㆍ축적ㆍ유통과 이를 통해 새로운 융합 가치를 창출하는 데이터 구동형 사회는 빅밸류의 비즈니스 모델과도 궤를 같이하는 모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서비스에 활용하는 데이터 범위도 더욱 확대하려 한다. 빅밸류는 데이터 공급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공기업과 제휴를 논의하고 있다. 다만 김 대표는 "알고리즘은 데이터가 원재료인데 신뢰성과 공급 안정성을 갖춘 민간 데이터 인프라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도 말했다.

새로운 사업 영역이 열리다보니 기존 산업과 충돌도 생겼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5월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감정평가법)'을 위반한 혐의로 빅밸류와 김 대표를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다. 감정평가사협회는 빅밸류가 감정평가사가 아닌 사람이 감정평가를 하는 것을 금지한 감정평가법을 어겼다고 주장햤다. 김 대표는 말을 아끼면서도 "규제 완화가 한시적인 부분도 있다보니 불합리한 규제에 대해선 재고(再考)할 필요가 있지 않나"고 했다. 프롭테크 업계에서 이번 법리 공방이 기술 혁신을 둘러싼 신구 산업 간 '부동산판 타다 사태'로 주목한다.

"부동산 금융 혁신 선도하는 게 목표이자 포부"

빅밸류는 올해 그간 성장세에 더 속도를 내려고 했다.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도 겹치고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규제 환경도 급속도로 변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긴 한데 내부적으로 사업 환경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는 "부동산은 데이터화(化)됐을 때 효용이 큰 분야다. 데이터화가 덜 돼 있고 정보의 비대칭성도 크다"며 "부동산에 데이터를 접목하면 시장을 효율화하고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줄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부동산 투기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빅밸류는 현재 시장에 공개된 시세 정보 솔루션 고도화와 공간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신규 서비스 개발을 지속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부동산 정보 불균형 해소에 일조하고 나아가 부동산 금융 혁신을 이끌어가는 선도적 역할을 해나가는 게 목표이자 포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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