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없는 서울시...도시재생ㆍ그린벨트 정책 어디로 가나

입력 2020-07-12 16:57수정 2020-07-1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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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ㆍ여당 맞서온 소신 정책 무산ㆍ수정 가능성

▲1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찾은 관계자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은 직업이 서울시장인가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을 것이다. 지난 9년간 소명감을 갖고 도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많은 시민의 삶과 꿈을 회복시키는 데에 집중했다. 도시 개발이나 랜드마크 건설이 아니라 용산참사, 노숙인 정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도시를 만들어왔다. 개발 만능 도시가 아니라 사람 중심 도시가 됐다. 시민의 삶을 바꾸는 10년 혁명의 마지막 2년을 잘 마무리 짓겠다."(7월 6일 민선 7기 2주년 기자간담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자"며 희망찬 앞날을 약속했던 박 시장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을 끝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서울시는 물론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서울시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4월 7일까지 서정협 부시장 체제로 움직인다. 그러나 차관급 정무직 국가공무원의 영향력이 선출직인 박 시장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때문에 장차 서울시 정책 운용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시장은 항상 '디테일'을 강조하며 서울시정을 살뜰히 챙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정부나 타 지자체의 표준 모델이 되는 정책을 선도적으로 시행했고 도시 재생, 임대주택 공급 확대, 제로페이, 청년수당, 그린뉴딜 등 굵직한 사업을 이끌어왔다.

특히 그린벨트 해제 문제 등 특정 사안에서는 정부ㆍ여당과 맞서면서까지 '소신 행정'을 펼쳤다. 그만큼 박 시장의 부재는 수년째 이어온 일관된 서울시의 각종 정책 방향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박원순표 개발 정책…재개발 아닌 재생, 그린벨트 해제 불가

박 시장은 전임 시장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정을 운영했다. 특히 토건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박 시장은 지난해까지 8년간 사람에 대한 투자에만 220조 원을 썼다.

박 시장의 개발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우고 새로 쓰는' 재개발·재건축이 아닌 '고쳐서 다시 쓰는' 재생이었다.

박 시장은 취임 직후인 2012년 초 '뉴타운·정비사업 신(新)정책구상'을 발표, 뉴타운 개발을 전면 재검토하고 주민 반대가 심한 지역은 구역을 해제했다. 보존과 재생을 필두로 낡은 주택과 골목을 수리하는 등 재생사업을 펼쳤다. 고가를 보행로와 공원으로 바꾼 서울로 7017이 대표적이다. 한강변 아파트에 층고 제한을 둔 '35층룰'도 같은 맥락이다.

박 시장은 그린벨트 해제에도 줄곧 반대해 왔다. 박 시장은 최근 국토교통부가 그린벨트를 해제 후 주택을 공급하자고 한 데에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놔야 할 보물과 같은 곳"이라고 못 박았다.

대안도 제시했다. 부족한 공급은 뉴타운 해제 지역을 서울시가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등 도심지를 고밀 개발하겠다고 했다. 서울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서울 주택의 10%(약 40만 가구)로 늘리면 공급 부족을 해소하고 집값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게 박 시장 판단이었다. 박 시장은 이번 주에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박 시장은 "한 뼘의 땅도 내주지 않겠다"며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실효제에 따라 사라질 뻔했던 118.5㎢(132곳) 도시공원을 용도구역으로 유지하거나 새로 묶어 모두 지켜내기도 했다. 장기미집행 도시공원을 그린벨트와 마찬가지로 주택 공급 대상지로 활용하자는 정부ㆍ여당의 줄기찬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ㆍ그린뉴딜 과제 산적

박 시장은 모든 정책에 목표의식을 담았다. 그러나 물러설 때는 과감하게 양보했다.

한때 정부와의 갈등이 표출됐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도 강한 의지를 담았다. 이는 현 광화문 광장 양측 도로를 보행광장으로 만들고 광화문 앞 월대를 복원해 역사성과 보행성을 회복하는 사업이다. 이를 두고 전임 시장들과 달리 눈에 띄는 토목공사가 없는 박 시장이 차기 대선을 노리고 이를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잇따랐다.

광화문 재구조화에 단호한 입장이던 박 시장은 네 차례 공개토론회와 두 차례 시민 대토론회를 열고 시민 생각을 들었다. 소음·교통혼잡 등 우려가 빗발쳤다. 박 시장은 "광화문 재구조화 사업은 장기적인 목표로 세월이 가면서 단계적으로 추진하면 좋겠다"고 숨 고르기를 했다.

그린뉴딜, 전 국민 고용보험, 제로페이, 청년수당 등 각종 정책에는 박 시장의 철학이 녹아있다. 특히 그린뉴딜은 건물, 수송, 도시숲, 신재생에너지, 자원순환 등 5대 분야에 2022년까지 2조6000억 원을 투입해 탈(脫) 탄소 경제ㆍ사회로의 대전환을 구상했다.

그러나 선장이 사라진 만큼 이러한 모든 정책은 갈 길을 잃은 채 표류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고로 시장 권한을 대행하게 된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10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향후 계획 등을 포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정협 부시장 권한대행체제…정책 실기 불가피

서울시는 역대 세 번째 권한대행체제에 들어섰다. 서 부시장은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서울시 행정과장, 시장비서실장, 시민소통기획관, 문화본부장, 기조실장 등을 두루 거쳤다.

서 부시장은 "서울시정은 안정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박원순 시장의 시정철학에 따라 중단없이 굳건히 계속돼야 한다"며 "부시장단과 실·국·본부장을 중심으로 모든 서울시 공무원이 하나가 돼 시정 업무를 차질없이 챙겨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 역시 이날 "서울시 시정이 한 치 흔들림 없는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지원하겠다"며 "현재 집행 중인 주요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살펴 시민 일상생활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 부시장이 정부의 영향력 아래서 벗어날 수 없는 국가공무원이라는 신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와 권한대행 체제가 9개월에 불과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정책 실기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 '그린벨트 해제' 등 부동산 개발 정책을 비롯해 박 시장이 정부ㆍ여당에 맞서온 여러 정책이 무산되거나 대폭 수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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