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간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전시회 ‘할머니의 내일’…“피해자 아닌 ‘아픔 가진 평범한 사람’”

입력 2019-08-12 16:31수정 2019-08-1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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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까지 갤러리 이즈에서 '할머니의 내일' 전시회가 열린다. 각종 설명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관람객들은 시선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사진 하나, 그림 하나, 일본 군복과 군표까지도 꼼꼼히 살폈다. 성인 몇 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소박한 공간이지만, 작은 보폭으로 걸으며 오랜 시간 둘러봤다.

일상 속 할머니는 소녀로 돌아간 듯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지만, 관람객들은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 이즈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전시회인 ‘할머니의 내일’이 열리고 있다. 7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보호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기획했다. 이번 전시회는 청주(8월 26일~29일)와 부산(10월 4일~17일), 대전(10월 28일~11월 10일), 다음 달에는 독일 베를린(9월 1일~14일)에서도 열린다. 처음엔 일본 순회도 계획했지만 무산됐다.

위안부가 무엇인지, 일본이 어떻게 만행을 저질렀는지부터 할머니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수백 점의 생활 사진들, 할머니가 손수 그린 그림과 관련 영상 자료를 볼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피해자 관점이 아닌 아픔이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호소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전시회는 할머니들을 향한 시선을 바꾸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피해자로 비친 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남들과 다른 아픔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을 호소했다. 이 때문에 할머니 개개인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료들이 준비돼 있었다.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고, 이 영상이 관객들의 발길을 특히 오래 붙잡았다.

영상을 본 뒤 눈물을 훔친 박지현(31) 씨는 “할머니들이 당했던 고통과 이를 극복하고 한 인격체로 다시 선 모습이 떠올랐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전시 기획처럼 할머니들이 남은 생을 ‘피해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부터 관점을 바꿔야겠다”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그린 그림.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전시회 자체에 의미가 있어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지만, 최근 일본과의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서연정(26·학생) 씨는 “평일에는 300명, 주말에는 500명 정도가 방문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목요일에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가 이곳에 방문해 관심을 당부하고, 언론도 보도를 많이 하면서 찾는 사람도 늘었다”라고 덧붙였다.

▲'내가 소녀상' 퍼포먼스처럼 의자 하나를 비워뒀다. 이곳을 방문했다는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전시회는 관람객의 참여를 독려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오가는 관람객들이 소녀상 옆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빈자리를 마련해 놓기도 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하고 있는 ‘내가 소녀상’ 퍼포먼스와 맥락이 닿아있다. 전시회 직원은 “많은 관람객이 사진을 찍는 등 참여가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쪽지를 적어 나무에 걸면 배지를 나눠주는 행사도 진행 중이다. 나무에는 할머니들을 향한 메시지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이 때문에 4일 만에 배지가 모두 소진됐다고 한다. 배지를 판매하지는 않지만 ‘도움을 주고 싶다’라며 구매를 문의하는 관객도 있다고 한다.

▲관람객이 할머니에게 쓴 쪽지. 바른 글씨체가 글쓴이의 진심을 배가시킨다. (홍인석 기자 mystic@)

전시를 보고, 참여하면서 할머니들의 아픔을 이해한 관람객들은 ‘일본군 위안부’는 잊어선 안 될 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가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국내외에서 흔들리는 세력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대에 태어나 같은 슬픔을 간직한 최병옥(80) 할아버지는 “일본은 여전히 과거를 외면하고 있고, 우리 사회 내에서도 일본에 사죄해야 한다거나 할머니 보고 이제는 다 잊고 쉬라는 말을 한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느냐”라며 “그 사람들이 이곳에서 전시를 봐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시회 아르바이트생 한은서(19·학생) 씨는 “초등학생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와 관련 내용을 듣고 배운다”라며 “중·고등학생이나 연인들도 차분하게 전시를 보면서 위안부에 대해 알아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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