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오토 인사이드] '라이트-사이징' 엔진이 온다

입력 2019-11-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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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별 배기량 축소가 아닌 모델별 최적화 엔진 등장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본격적인 ‘라이트-사이징(Right-sizing)’ 시대를 맞고 있다. 맹목적으로 엔진 배기량을 줄이는 이른바 ‘다운-사이징’과 궤가 다르다.

작은 엔진으로 소형차는 물론, 대형차와 스포츠카까지 아우르는 트렌드가 ‘라이트-사이징’이다.

▲직분사 기술과 과급기(터보) 기술이 안정화되면서 작은 엔진으로 큰 힘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들은 연비와 배기가스 규제에서 유리하다는 장점도 지녔다. (출처=아우디프레스)

◇국제유가 급상승 탓에 다운사이징 본격화=2008년 리먼 쇼크로 급락했던 국제유가는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중동 지역의 정정이 불안해지면서 공급 부족 상황을 낳아 다시 배럴당 120달러를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전 세계 경제가 혼란에 빠지면서 사람들은 ‘모험자산’ 대신 금과 국채 등 안전자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 무렵, 자동차 산업도 변혁기를 맞았다. 국제유가가 급등하기 전까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는 고급차를 앞세워 자존심을 지켜왔다.

예컨대 브랜드별로 12기통 6000㏄ 대배기량 엔진을 얹은 고급차를 앞다퉈 내놓으며 경쟁을 벌였다. 독일차 가운데 △메르세데스-벤츠 S 600 △BMW 760Li △아우디 A8 W12 등이 2000년대 ‘플래그십 전쟁’의 주인공이었다.

반면 리먼 쇼크 이후 아랍의 봄 사태로 유가급등 직격탄을 맞은 이들은 서둘러 배기량을 낮추고 몸집을 줄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처음으로 4기통 S-클래스를 내놨고, BMW 7시리즈도 12기통 대신 6기통 모델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른바 ‘다운 사이징’의 시작이었다.

▲지프 랭글러는 이제 2.0 터보 엔진을 얹고 나온다. 배기량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최고출력(272마력)은 이전 4000cc 엔진(190마력)을 크게 앞선다. (출처=KBB닷컴 )

◇유가 상승 속에서 기회 거머쥔 현대ㆍ기아차=현대ㆍ기아차에는 이 시기가 기회였다.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약진하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값싸고 기름 덜 먹는 차가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세련된 디자인이 현대ㆍ기아차에 속속 도입되면서 한국차가 본격적인 전성기를 이루기 시작했다.

거꾸로 대배기량 픽업트럭과 SUV에 집중했던 미국 빅3는 차례대로 무너졌다. 포드는 몸집이 쪼그라들었고, GM에는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무너진 크라이슬러는 피아트와 합병하기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주력 모델 대부분은 기름을 많이 먹는, 이른바 ‘오일 머신’들이었다.

이후 국제유가가 점진적으로 안정화에 접어들면서 자동차 트렌드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배럴당 150달러를 넘나들던 국제유가는 50달러 아래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동시에 기름을 많이 먹어 사정권에서 일단 배제됐던 픽업트럭과 SUV가 본격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쉐보레를 대표하는 중형세단 말리부 역시 '라이트-사이징' 엔진을 얹었다. 3기통 1.35리터 터보 엔진은 커다란 중형차에 모자람이 없다. (사진제공=한국지엠)

◇獨 아우디가 ‘라이트 사이징’ 주도=기름값이 내렸지만 완성차 메이커는 다시 엔진 배기량을 끌어올리지 않았다. 이제 작은 엔진으로도 놀라운 출력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생긴 만큼, 하나의 엔진으로 다양한 출력을 뽑아냈다. 직분사 방식과 과급기(터보) 등 기술력이 쌓인 것도 이를 뒷받침했다.

예컨대 현대차의 경우 2000년대 초 미국 크라이슬러, 일본 미쓰비시 등과 공동 개발한 세타 엔진을 여전히 사용 중이다. 직분사(GDi) 방식과 과급기(터보) 등을 추가하며 출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결국 더 이상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기보다 현행 엔진을 개조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트렌드도 탄생했다. 2015년 독일 아우디가 주장한 맞춤형 엔진, 이른바 ‘라이트-사이징(Right-sizing)’ 엔진이다.

▲아우디는 차 크기를 막론하고 여러 모델에 직렬 4기통 2.0 터보 엔진을 쓴다. 최고출력은 각 모델별로 최적화돼 제각각이다. (출처=아우디프레스)

◇만능으로 돌변한 직렬 4기통 2.0리터 엔진=라이트 사이징은 무조건 엔진 배기량을 낮추는 ‘다운 사이징’과는 궤가 다르다. 2.0리터 안팎의 엔진으로 원하는 만큼 출력을 뽑아내고, 배기가스 규제까지 만족할 수 있는 엔진이 라이트-사이징이다.

쉐보레 중형세단 말리부 역시 3기통 1.35리터 엔진을 바탕으로 최고출력 150마력을 뽑아낸다. 중형세단에 모자람 없는 출력을 내면서 낮은 배기량으로 배기가스를 현저히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쉐보레가 찾은 셈이다.

당장 아우디코리아가 국내에 선보이는 △A4(190마력)와 △A6(252마력)는 동일한 2.0 터보 엔진을 얹었으나 최고출력은 제각각이다. 하나의 작은 엔진으로 각각의 모델에 최적화된 성능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소형차 A 45 AMG는 직렬 4기통 2.0리터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을 무려 360마력이나 뽑아낸다. (출처=다임러미디어닷컴)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작은 엔진으로 고출력을 뽑아내고 있다. 엔트리급 A-클래스의 고성능 버전은 2.0 터보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을 무려 360마력이나 뽑아낸다. 현존 2.0리터 엔진 가운데 최대치다.

같은 배기량의 현대차 쏘나타 터보가 최고출력 245마력, 폭스바겐 7세대 골프가 230마력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당분간 다운사이징 시대를 대신해 ‘라이트 사이징’ 트렌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면서 “더 이상 새 엔진 개발에 돈을 들이지 않겠다”는 절박함도 서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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