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별’ 임원 명암] ③임원도 임원 나름…진상과 방상이 경쟁하고 눈칫밥은 필수

입력 2019-11-05 17:30수정 2019-11-0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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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직급에도 뚜렷한 서열과 기득권 존재, 휴가 못 가고 경영진 호출에 초긴장

“주변에서 이제는 상무가 됐으니 상무답게 행동해야 한다는데…. 아직 모르겠어요. 하는 일은 똑같고 직함만 무거워졌습니다.”

올해 들어 직급체계가 바뀐 현대차그룹의 한 상무는 바뀐 직함이 여전히 불편하다. 타이틀이 이사에서 상무로 바뀌었으니 언뜻 승진처럼 보이지만 직급에서 느끼는 부담감만 더 커졌다. 하는 일이나 연봉은 동일한데 책임질 일만 늘어난 분위기다.

예컨대 후임의 공(功)은 임원의 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임의 잘못은 분명 임원의 책임이다.

치열한 사내 정치싸움도 주요 기업 임원에게는 무거운 짐이다. 때문에 △눈치 △코치 △재치가 필수다.

빠른 ‘눈치’는 슬기로운 임원 생활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여기에 후배를 끌고 갈 수 있는 적절한 ‘코치(coach)’도 필수, 나아가 직원과 경영책임자 사이에서 재치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상무직급이 크게 증가했다. 초급 임원인 이사대우와 이사가 모두 상무급으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같은 직급 임원끼리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그래픽=이투데이)

◇‘진상’과 ‘방상’의 전성시대=최근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현대차그룹 계열사에서는 다양한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른바 △진상 △방상 △어상이다. 하나같이 상무급 임원을 부르는 말이다. 각각 △진짜 상무 △방(독립된 사무공간)이 있는 상무 △어쩌다가 상무가 된 상무 등을 지칭한다.

5월 현대기아차는 임원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사대우→이사→상무를 모두 하나의 상무로 통합했다. 조직의 효율성을 위해 비대했던 임원 직급체계를 줄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대차 기준 550여 명 임원 가운데 상무급만 400명 가까이 된다.

같은 상무급 임원이지만 사정은 제각각이다. 진짜 상무는 직책 개편 이전부터 상무였다. 대부분 요직을 꿰차고 있는 이들이다. 호시탐탐 전무 승진을 노리는 이들이다.

방상은 이보다 뒤늦게 상무에 올랐지만, 서열상으로 독립적인 사무공간을 가진 상무다. 어상은 바로 얼마 전까지 이사대우 및 이사 직급이었던 초급 임원들이다.

같은 상무들이지만 진상과 방상은 사실상 상무 위의 상무로 군림한다.

다만 전무 승진을 노렸던 진상들은 이제 경쟁자가 더 많아졌다. 사실상 이사와 이사대우와도 승진 경쟁하는 양상이 됐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12월 정기 인사 대신 상시 인사제도를 운용 중이다. 8월 초 이 제도를 통해 상무급 30여 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물러난 이들을 따져보면 진상과 어상이 거의 50:50으로 박빙이었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후임의 공(功)은 임원의 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임의 잘못은 분명 임원의 책임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갖가지 경영사안에 대한 책임도 짊어져야 한다. 회사의 중대 과실에 대해 대국민 사과에 나선 한 기업의 임원들 모습. (뉴시스)

◇눈칫밥이 임원 밥 = 삼성그룹의 일부 임원들은 최근 몇 년간 여름휴가를 제대로 가지 못했다.

2014년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우면서 회사 안팎으로 분주했고, 2017년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이 있었다.

작년과 올해에는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김동연 전 부총리 등이 삼성 사업장을 찾으면서 청와대 인사들의 방문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LG그룹 임원들은 지난해 구광모 회장이 취임 후 구 회장의 경영 스타일 파악에 분주했다고 한다.

최고경영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 가치를 알아야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취임 후 첫 사장단 워크숍에서 "전례없는 위기에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를 가속해 달라. 위기 극복을 위해 사업 방식과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당부했다.

본사와 떨어진 곳으로 사옥을 옮긴 한 계열사 임원들은 얼굴이 밝아졌다.

종종 회장실에 불려가는 경우가 있는데, 트윈타워에 있을 때는 마음의 준비나 대책 없이 상황을 접해야 할 때가 많았다. 사옥을 이전하고 난 뒤 잘 부르지도 않고 호출이 떨어져도 준비할 시간이 있어 예전보다 좋아한다는 후문이다.

‘낀 세대’인 임원은 상급자뿐만 아니라 후배 직원들의 눈칫밥도 부담스럽다.

국내 모 철강회사 임원들은 기부활동에 눈치를 보고 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급여 일부를 기부해 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임원이 직원들의 기부 상황을 직접 관리하면서 "후배들의 눈치도 보게 됐다"고 토로한다.

▲많은 기업이 근무복 자율화를 통해 정장을 걷어냈지만 눈칫밥을 먹는 임원들은 예외다. 언제든 총수의 호출에 대비해 정장을 갖춰놓는 일이 다반사다. 사진은 회의에 앞서 겉옷을 벗고 있는 임원들 모습. (이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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