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아베는 측근을 쳤는데

입력 2019-10-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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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경제부장

모든 기업과 그 기업에 속한 종사자들은 다 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걸. 인사 하나 잘못하면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어서다. 그래서 인사 때면 어느 조직이든 심각하다.

이런 암묵적인 기본이 가장 무시되는 사회가 정치의 세계다. 개혁인사다, 발탁인사다 하면서도 결국은 ‘코드인사’로 귀결된다. 지금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 잘못된 인사 때문에 민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본에서는 취임 한 달 반 만에 사임한 스가와라 잇슈 경제산업상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뇌물을 뿌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이 커지자 스가와라는 정권에 누가 된다며 사표를 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즉시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 인사를 냈다.

스가와라는 지난달 개각 때 경제산업상에 지명될 당시, 이례적인 발탁 인사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달 10일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에서 스가와라가 과거에 유권자들에게 멜론과 게, 명란젓 등을 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고, 24일에는 지역구 후원자의 장례식에 비서가 부의금과 조화를 보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비난이 거세지자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일본에서 공직선거법은 정치인이나 후보자가 지역구 사람에게 금전이나 재산상의 가치가 있는 물품을 전달하는 걸 불법적인 기부금으로 간주해 금지하고 있다. 정치인 본인이 직접 가지 않고 전달하는 부의금은 모두 불법이다. 비서가 자신이 모시는 정치인 명의로 부의금을 내는 것도 금한다. 금품 제공으로 선거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을 엄중하게 단속한다는 취지다.

이런 법은 아랑곳없이 스가와라는 자신의 선거구 관리에 지극 정성이었다. 200명의 유권자를 관리하면서 A·B·C등급으로 나눠 선물이나 부조금에 차등을 둬 뿌렸다. 심부름을 했던 비서들은 위법인 걸 알면서도 “싫으면 그만두라”는 정치권의 관행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스가와라가 이처럼 불미스럽게 낙마하면서 아베 총리도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정권 2기 출범 이후 아홉 번째 각료 사임인 데다 최근 불거진 간사이전력 임원들의 금품수수 문제로 경제산업성이 시끄러운 가운데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임명 책임은 나에게 있다. 국민들께 깊이 사죄한다”며 자신의 인사 검증 실패를 인정했지만, 일본 국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임명 책임을 지려면 총리직을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면서 한 번이라도 책임진 적이 있냐”, “법을 지키지 않아도 장관이 될 수 있구나”, “비서에게 부의금을 내게 하고선 몰랐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 정말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거짓말이다”, “아베 총리는 늘 자민당은 인재의 보고(寶庫)라고 했는데, 이제 보니 준법 의식 없는 무리의 소굴이다” 등 거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의혹투성이인 조국 씨를 법무장관에 기어코 앉혔다가 국민들에게 “퇴진하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조 씨가 연루된 혐의는 멜론, 명란젓, 게와는 비교도 안 된다. 부인의 자녀 입시 부정과 석연치 않은 투자,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 씨의 공모가 있었느냐다. 이처럼 문제 있는 인사에 대해 문 대통령은 한 번도 우리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간 우리나라 검찰의 행동 패턴을 보면 일정한 법칙이 있었다. 대통령 5년 임기 중 초반은 전 정권의 비리 수사에 집중하고, 후반에 정권의 구심력이 떨어지면 여론을 조성해 현직 대통령과 그 주변으로 화살을 돌렸다는 것이다. 국민을 무시하고 독불장군처럼 굴다간 검찰의 활 시위가 문 대통령에게 당겨질 수도 있음이다.

‘촛불 정권’이라고 자부할 때는 지났다. 자각할 때다. 이번 정권은 문 대통령의 노력과 능력으로 잡은 것이 아니다. 국정농단으로 몰락한 전 정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갈 곳 잃은 유권자들이 울면서 던져준 표였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마지막을 기억하길 바란다.

sue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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