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희의 뉴스카트] 10년전 초저가 망령에 사로잡힌 대형마트

입력 2019-09-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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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바이오부 차장

언젠가 본 듯한 데자뷔 현상이 대형마트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다. 20여 년 전 장을 보는 곳은 재래시장이었고, 10여 년 전에는 대형마트가 그 자리를 꿰찼다. 당시 대형마트는 지금의 이커머스만큼이나 빠른 출점과 성장을 거듭했다. 또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형마트는 재래시장처럼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대신 그 자리는 온라인 장보기를 앞세운 이커머스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위기는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이마트는 2분기 영업손실 299억 원으로 창립 26년 만에 첫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이마트보다 점포수가 적은 롯데마트는 같은 기간 340억 원의 적자를 냈다. 비상장사인 홈플러스는 분기별 실적을 공개하지 않지만 지난해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던 것을 감안할 때 큰 수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대형마트들은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일제히 ‘초저가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단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성공한 모양새다. 이마트가 ‘에브리데이 국민가격’ 일환으로 선보인 4900원짜리 와인은 준비한 물량의 절반 이상이 2주 만에 팔려나갔다. 이마트는 와인 가격을 낮추기 위해 100만 병을 대량으로 구입했다. 롯데마트 역시 매그넘 사이즈 와인을 7900원에 판매하며 맞불을 놨다.

최근에는 생수까지 초저가 경쟁이 뜨겁다. 대형마트 3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병당(2L 기준) 300원 내외의 생수를 내놨다.

그러나 초저가 전략이 실적 부진을 타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미 10년 전 대형마트 전성기 시절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마트 출점이 늘고 매출과 이익이 동반 상승하던 시절 성공했던 전략을 ‘디플레이션’ 경고가 쏟아지는 현 상황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이 과연 맞는 방향이냐는 지적이다.

초저가 상품이 미끼상품 역할을 하던 시절은 지났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면서 다른 제품까지 한 곳에서 구입하던 원스톱 쇼핑의 편리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미끼상품에 현혹돼 다른 제품을 집어드는 대신 미끼상품인 초저가 제품만 똑똑하게 구매한다. 또 원스톱 쇼핑보다 문 앞에서 배송받는 편리함을 선호한다.

과거 대형마트는 제품을 고르는 순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지만 당일배송이 확산되는 요즘 이커머스로 이탈하는 고객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쿠팡의 유료 멤버십 성공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쿠팡의 프리미엄 유료 멤버십 서비스인 로켓와우클럽은 론칭 1주일 만에 15만 명을 넘어서더니 4개월 만에 가입자 17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0.04%로 떨어지면서 정부의 진화에도 불구 디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소비를 비롯한 경제 전반이 침체되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고에 대형마트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초저가 전략은 이제 더 이상 대형마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커머스들은 데이 마케팅을 넘어 타임 마케팅까지 열을 올리며 일자별, 시간대별 할인을 상시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10년 전 성공했던 초저가 망령에만 집착할 것인가. 대형마트의 재기는 오프라인 유통만이 할 수 있는 장점을 찾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yhh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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