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경제] '공룡덕후' 김진겸 대표 "성공한 '덕업일치'…사업화한 모형만 290개"

입력 2019-09-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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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이투데이가 김진겸 비타민상상력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은 그가 만든 공룡 피겨로 가득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공룡’은 어린 시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덕질의 대상이다. 수많은 공룡의 이름을 외우고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 지금 사는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은 독특한 모양새가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공룡 덕후’인 김진겸(32) 비타민상상력 대표는 여기에 이유 하나를 더 추가했다. 바로 ‘센 것에 대한 동경’이다. 김 대표는 “처음엔 사자를 좋아했는데 멸종한 동물 중에 사자보다 크고 센 공룡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좋아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김진겸 대표가 만든 공룡 피겨. 공룡은 물론 서있는 땅까지 옛 모습을 재현하려 힘썼다. (홍인석 기자 mystic@)

그런 호기심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공룡은 제가 제일 잘 만듭니다”라고 말하면 인정받는 위치에 섰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컴퓨터 그래픽 분야인 3D 모델링으로 공룡을 복원, 모형으로 만드는 유일한 인물이다.

3D 모델링은 대개 영화 CGㆍ동영상ㆍ게임에 이용되지만, 그는 ‘덕업일치’를 꿈꾸며 전공과 공룡을 소재로 일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지난 5년 동안 290개의 3D 모델링과 모형을 만들었다.

'비타민상상력'은 김 대표가 3D 모델링으로 공룡을 그려 3D 프린트로 찍어내 판매한다. 도색도 직접한다. 쉽게 말해, 디자인부터 제품 가공까지 도맡는 셈이다. 가격은 7만~12만 원 정도. 3D 모델링으로 그린 그림을 출판사에 팔아서도 수익을 낸다.

하지만, 가장 큰 수익원은 공룡을 복원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 일이다. 공룡 뼈 일부나 발자국이 새로 발견되면 자료를 찾고 자문을 받아 공룡의 전체 생김새를 모형으로 만든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이 걸린다. 공룡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인 이융남 서울대학교 교수와 협업할 정도다.

해외에서도 그가 작업한 그림이나 모형을 사고 싶다며 문의가 온다. 최근에는 3D 도구 활용법을 가르치고, 창업에 대해 조언하는 강연도 나간다. 공룡 관련 애플리케이션에도 김 대표가 그린 그림이 들어가는 일도 있다. 공룡 피겨 외에는 '비교 견적'이 없을 만큼, 국내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고 있다.

▲공룡 뼈로 만든 피겨도 있다. 가격은 7만 원에서 10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지금은 업계에서 인정받는 실력자로 통하지만, 처음부터 ‘꽃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김 대표는 “사실 산업디자인공학과가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돈을 잘 버는 과가 아니다. 이왕 박봉이면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생각해 창업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창업한 회사는 얼마 가지않아 문을 닫았다. 이후 그는 2014년 공룡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은 '비타민상상력'을 만들었다. 재능과 흥미를 한데 모은 도전이었다.

업(業)으로 삼을 만큼 그가 느끼는 공룡의 매력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공룡의 변화’라고 했다. 이미 멸종한 동물이라 더욱 변화가 극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

김 대표는 “옛날에는 공룡이 긴 꼬리를 끌고 다니는 느린 파충류라고 했는데 최근에 나온 연구를 보면 다르다”라며 “공룡은 꼬리와 머리를 수평으로 맞춰 빠르게 움직이는 동물이다. 이러한 변화가 공룡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만드는 모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단다.

▲3D 모델링 도구를 활용해 공룡 모습을 복원한다. 이 그림만 사고 싶다며 문의를 해오는 업체도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재능과 관심사를 엮어 경제활동을 하는 김 대표는 친구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는 “친구들이 고등학교 때만 해도 ‘몇 살인데 공룡을 좋아하냐’라고 했는데 지금은 부럽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것을 일까지 하고 있으니 친구들 눈엔 좋아 보이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남들은 ‘덕업일치’에 성공했다고 부러워하지만,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김 대표 역시 사업체를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스트레스받는 것은 똑같다. 뭐 하나 얻으면 뭘 하나 잃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면서 “하고 싶은 일은 하지만 수입이 들쑥날쑥해 만족도가 그리 높지만은 않다”라고 말했다. 다른 샐러리맨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술회했다.

▲크기가 작은 공룡 피겨도 있다. 작지만 색과 피부의 질감이 살아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김 대표는 인터뷰 도중 제도적 지원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그는 "중국에서는 공룡 피겨를 만드는 회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3D 프린터가 대중화되면서 다른 나라도 관련 콘텐츠에 많이 투자하는 추세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재료비를 사라고 돈을 지원해줘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재판매할 수 있다고 해서 안 된다고 하더라.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며 "한국은 돈 주는 기관이 콘텐츠 산업에 투자하면 금방 뽀로로나 라바가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한 번 해볼까?'라며 무작정 시작하면 다치기만 한다. 진짜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홍인석 기자 mystic@)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경쟁국의 추격에도 그는 새로운 비전을 품고 있었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것. 김 대표는 "그간 멸종한 동물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호랑이처럼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도 신경 쓸 생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는 "예전에 비하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사람에 의해 멸종돼가는 동물이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일을 시도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가 가장 애착있다는 스피노사우르스. 이걸 만든 뒤로 해외에 알려졌다고 한다. (홍인석 기자 my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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