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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독일] 경영착오·정부개입 ‘겹악재’ 수렁 빠진 독일 대표 기업들
입력 2019-07-29 06:01
증시 상장사 3분의 1이 실적 하향·구조조정 등에 직면

독일 기업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 많은 독일 기업이 올해 자국 경기둔화와 더불어 경영 판단 착오와 디지털 경제에 대한 부적응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단순히 외부 경영환경 악화만이 아니라 그동안 독일 기업이 자랑해왔던 ‘효율성’에 이변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세계화의 야망을 접고 정리해고에 착수했다. 이달 초 사실상 투자은행(IB) 사업을 포기하고 오는 2022년까지 1만8000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막대한 구조조정 비용에 도이체방크는 2분기 31억5000만 유로(약 4조1338억 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WSJ는 도이체방크가 수렁에 빠진 원인 중 하나로 20년간 진행됐던 경영진들의 의문점이 많은 서투른 판단을 꼽았다. 도이체방크의 핵심 사업은 전통적으로 제조업계를 대상으로 한 상업은행 부문이었으며 독일은 활기 찬 금융시장이 없었는데 무리하게 월가에 대항할 수 있는 IB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 결과 결국 지금과 같은 사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의 개입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2004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총리는 글로벌 은행을 탄생시킨다는 명분으로 도이체방크에 우정국 산하 금융 자회사인 포스트방크 인수를 압박했다. 도이체방크는 결국 슈뢰더가 이미 정계를 떠난 2010년 포스트방크를 인수했지만 통합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매각해야 했다.

독일 정부는 올해 초에도 도이체방크와 2위 코메르츠방크의 합병을 추진했으나 결국 무산돼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도이체방크 경영진들이 엉뚱한 데 힘을 쏟게 했다. 그러면서도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가 보유한 1300개 가까운 소규모 신용협동조합이나 저축은행의 통합은 거부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물론 독일 경제를 상징하는 제조업체들도 허덕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WSJ는 독일 증시 DAX지수에 속한 기업의 약 3분의 1이 실적 악화 경고나 구조조정, 심각한 소송, 당국의 조사 등에 휘말린 상태라고 지적했다.

럭셔리 자동차의 대명사인 BMW의 최고경영자(CEO)였던 하랄트 크뤼거가 이달 초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자동차 산업의 변화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지만 크뤼거가 수익성이 낮은 전기자동차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반발이 컸던 것이 주원인이었다. BMW의 미래를 책임질 전기차 인재들이 속속 회사를 떠났다. 그 중에는 아우디의 차기 CEO로 꼽히는 마커스 뒤스만도 있다.

바이엘은 지난해 인수한 미국 대기업 몬산토와 관련한 소송에 휘말렸다. 몬산토의 제초제 ‘라운드업’을 둘러싼 막대한 피해배상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몬산토를 인수한지 1년도 안 돼 소송에 휘말렸다는 것은 그만큼 바이엘이 세계적인 대기업답지 않은 어설프고 신중하지 못한 경영 판단을 했다는 의미다.

독일 DVAM자산운용의 마르크스 쇤 매니징디렉터는 “독일 경제가 장기간 좋은 상황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이 너무 방심한 것 같다”며 “독일은 현재 위기에 빠져 있지만 기업들이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언스트&영 독일 법인의 허버트 바스 CEO는 “독일 우량기업들이 세계 경제가 디지털화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것에 보조를 맞추고 있지 못한다”며 “페이스북이나 아마존의 영역인 플랫폼에서 한몫하는 독일 기업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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