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 보고서] 오리엔탈정공, 은인 산업은행에 ‘부당이익 반환 소송’ 악연

입력 2019-07-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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⑯오리엔탈정공, 워크아웃 졸업했지만...주식 단기매매차익 12억 두고 갈등

한 회사가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갚을 날이 다가왔지만 자금이 바닥났다. 은행은 만기를 몇 년 더 연장해줬다. 회사는 문 닫을 위기에서 벗어났다. 7여 년이 지나 이 회사와 은행은 법정에서 다시 만났다. 은행은 피고 신분이었다. 은행 덕에 파산을 모면한 회사가 은행에 소송을 건 셈이다. 은행이 회사의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얻은 부당이익을 반환하라는 내용이 요지다. 여기서 회사는 오리엔탈정공이고, 은행은 KDB산업은행이다. 둘의 질긴 악연의 시작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업황 침체에 발목잡힌 오리엔탈정공… 산은과 ‘워크아웃’ 악연 시작 = 선박 상부 구조물과 선박용 크레인을 주력으로 하는 오리엔탈정공은 1980년 설립됐다. 이후 연 매출액 3000억~4000억 원을 기록하며 부산을 대표하는 중견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매출액 기준 부산 소재 기업 20위권이었다. 직원 수도 협력사 포함 2200명에 달했다.

상황은 2008년 하반기 반전됐다. 발단은 조선 업황의 침체였다. 지속적인 경영실적과 재무구조 악화, 중국 현지 계열회사의 투자 성과 저조, 해양구조물 제작 및 소형 특수선 건조사업 부진 등에 고군분투하던 오리엔탈정공은 2012년 2월 22일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SOS’ 신호를 보낸다. 같은 달 29일 채권단은 관리절차를 개시하고, 4개월간 실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채권단은 오리엔탈정공의 회생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8월 채권단과 오리엔탈정공은 경영 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안 및 지원 방안을 담은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을 체결했다. 시한은 2016년 12월 31일, 약 4년이었다.

직후 오리엔탈정공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주주들에게 부실의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감자를 시행했다. 대주주는 보통주 20주를 1주로, 소액주주는 5주를 1주로 병합하는 방식의 차등감자였다. 감자비율은 85.71%. 자본금은 141억 5843만 원에서 20억 2277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채권단은 출자전환을 통해 부채 부담을 줄여줬다. 그해 11월 오리엔탈정공의 최대주주는 지분 76.11%를 보유한 산은이 됐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서상원 대표의 지분율은 감자와 유상증자를 거쳐 0.81%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한 경영 정상화 과정 끝에 오리엔탈정공은 2016년 2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당초 기한보다 9개월여 이른 시점이다. 오리엔탈정공 채권단이 연합자산관리주식회사(유암코)에 협약채권을 매각한 데 따른 결과다. 이후 채권단은 출자전환한 주식도 처분하기 시작했다. 2017년 8월 산은 등으로 구성된 주주협의회는 오리엔탈홀딩스와 오리엔탈정공의 보통주 2027만 주를 장외에서 매매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오리엔탈정공의 최대주주는 산은에서 오리엔탈홀딩스로 바뀌었다.

◇ 끝난 줄 알았던 악연… 법적 공방으로 비화 = “(산업은행에) 주식매매로 인한 단기매매차익 12억3735만5016원의 반환을 요구한다.”

워크아웃 졸업과 주식 처분으로 둘의 악연은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변수가 생겼다. 화근은 2015년으로 돌아간다. 당시 산은은 오리엔탈정공에 대해 갖고 있던 대출채권 일부를 출자전환하고, 오리엔탈정공이 발행한 신주 174만여 주를 취득했다. 출자전환이다. 단가는 2265원. 산은은 2015년 9월부터 2016년 1월까지 12차례에 걸쳐 원고의 보통주 174만3276주를 단가 2337원에서 3900원 사이에서 팔았다. 여기서 발생한 약 12억3736만 원의 차익이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제172조에 따르면 특정 금융투자상품을 매수한 후 6개월 이내에 매도하거나 특정증권등을 매도한 후 6개월 이내에 매수하여 이익을 얻은 경우에는 법인은 임직원 또는 주요주주에게 그 이익을 반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증권선물위원회는 2017년 7월 “산은의 단기매매차익 12억3736만 원의 취득 사실이 발견됐으니 피고에게 단기매매차익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같은 법률 제172조 3항에는 ‘단기매매차익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는 해당 법인에 이를 통보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오리엔탈정공은 8월과 9월 산은에 반환을 요구하는 공문을 두 번 발송했다. 산은은 거절했다. 11월 29일 오리엔탈정공은 부산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 1심 “산은, 매매차익 돌려줘라”…항소 진행 중 = “피고는 원고에게 12억3735만5016원 및 이에 대하여 2017년 12월 7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1년 뒤인 2018년 11월 15일. 부산지법 서부지원 민사1부(재판장 장성학 부장판사)는 오리엔탈정공의 손을 들어줬다. 산은의 매매차익이 ‘단기매매차익 반환의 적용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쟁점은 산은의 출자전환과 주식매매가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에서 언급된 단기매매차익 반환의 예외사유 조항 중 ‘불가피하게 매수하거나 매도하는 경우’에 해당하는가였다. 산은 측은 워크아웃의 근거 법률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서 ‘채권금융기관이 협의회가 의결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고 명시한 것을 근거로 불가피한 매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기촉법이 직접 출자전환이나 주식매도를 명하거나 주식 거래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닌 이상 협의회 결의에 따라 매수한 것이 ‘법령에 따라 불가피하게 매수하거나 매도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쟁점은 출자전환과 주식매매가 비자발적 거래나, 객관적으로 내부정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느냐였다. 그런 경우 해석에 의한 단기매매차익 반환의 적용 예외 사유가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점도 부정했다. 비자발적 유형의 거래는 자발적 의사결정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야 하는데 산은의 매매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당시 피고에게는 내부정보에의 접근 가능성 또한 존재했던 상태였다”며 “당시 거래가 객관적으로 내부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유형의 거래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도 주요 쟁점이었다. 신의칙이란 권리와 의무를 이행할 때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권리만 누리고 의무는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맥락이다. 산은 측은 워크아웃 과정에서 오리엔탈정공이 출자전환을 요청해놓고, 단기매매차익의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괘씸죄’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오리엔탈정공이 워크아웃 절차에서 스스로가 협의회에 이 사건 출자전환을 요청했다 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이 사건에서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단기매매차익의 반환을 구하는 것을 금반언의 원칙 또는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산은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선고 2주 뒤 항소를 결정했다. 산은과 오리엔탈정공의 법정공방은 고등법원으로 넘어가 이어지고 있다. 다음 달 22일 두 번째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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