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군산의 夏③] 사라진 20일 축제…'매출 반토막' 호프집 사장님, 긴 한숨

입력 2019-07-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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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경제 중심 GMㆍ현대중공업 폐쇄로 인기척 사라진 먹자골목…가계 30% 폐업

전라북도 군산시 지역경제의 뿌리는 ‘대우와 현대’였다.

1997년 대우자동차가 군산시 소룡동 국가산업단지에 공장을 세웠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방인들은 산단 주변에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소룡동과, 그 옆 나운동은 이들의 터전이 됐다. 2001년 대우차는 지엠에 팔렸지만 노동자들의 ‘지엠 조끼’는 마을의 상징이자 자부심이 됐다.

2007년 현대중공업이 오식도동 국가2산업단지에 군산조선소를 설립했다. 2단지는 소룡동의 서쪽 바다를 메우며 형성됐다. 해안선이 바뀌었고, 땅에서 18km 떨어진 섬 오식도는 육지로 편입됐다. 노동력이 또 다시 밀물처럼 몰렸다. 오식도동 한가운데에는 타지에서 온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사람들이 몰리자 자연스레 상권이 생겨났다. 오식도과 소룡동, 그리고 나운동에는 낮이건 밤이건 사람들로 가득했다. 매달 20일 저녁이면 한국지엠과 현대중공업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가족과 함께, 또는 서로 모여 식당과 술집, 골목을 가득 채웠다. 이날은 두 회사의 월급날이었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역 상인들에게도 “축제의 날”이었다.

▲사람이 떠난 군산 오식도동. 점심무렵 상가 상당수가 비어있다.(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 ‘주차장’ 된 오식도동 4차선 도로…“대출 ‘락’ 걸렸다는 소문 돌아” = 지역경제의 침체도 현대와, 이제는 이름이 바뀐 지엠으로부터 시작됐다. 두 거대기업이 떠나고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지 않자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오식도동을, 소룡동과 나운동을 떠나갔다. 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근간으로 운영되는 상권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지난달 18일 오후 6시께 오식도동의 주요상권인 가도로 주변에서는 행인 한 명 찾기 어려웠다. 4차선이나 되는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도 없었다. 그나마 양끝 차선에 몇대의 주차된 차량만이 도로를 지키고 있었다. 작년 말부터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46·여)씨는 “산단에서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밥이나 술을 먹는 것”이라며 “어차피 돌아다니는 차도 없고 사실상 도로가 주차장”이라고 말했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오식도동은 군산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손꼽혔다.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한국지엠, 협력사 등 노동자들은 퇴근 후 오식도동에서 저녁을 먹고 유흥을 즐겼다. 5년 째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는 장모(57·여) 씨는 “지금은 거의 점심 장사가 전부지만 예전에는 저녁 장사였다”며 “특히 우즈베키스탄이나, 베트남, 중국, 방글라데시에서 온 외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회상했다.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가도로의 좌우로 서있는 상가 건물의 3분의 1가량은 유흥주점이다. 이따금씩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절반은 외국인이었다.

▲오후 6시반께 오식도동의 4차선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는 없었다. 그나마 양끝 차선에 몇대의 주차된 차량만이 도로를 지키고 있었다.(군산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

상권 몰락은 매출의 감소가 방증했다. 편의점을 제외하고 유일한 프랜차이즈업체였던 파리바게트가 최근 문을 닫은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 있던 치과도 지엠공장 페쇄 뒤 마을을 떠났다. 현재 오식도동 주민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병원이라고는 가정의료원 하나뿐이다.

6년 째 족발집을 운영하고 있는 오모(50) 씨는 “확실히 현대중공업과 한국지엠의 폐쇄와 맞물려 매출이 급감했다”며 “군산조선소 폐쇄 이후 반토막 났고, 작년 한국지엠이 나간 뒤로 한 번 더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2년 새 매출이 4분의 1가량 줄어든 셈이다. 4년 전 고모에게 카페를 물려받은 이모(45·여) 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씨의 카페는 과거 지엠 노동자들의 ‘아지트’였다. 이씨는 “오후 근무조인 지엠 노동자들이 점심 먹기 전에 근무복을 입고 삼삼오오 모이곤 했다”며 “지금은 어디서도 지엠 조끼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쪽은 메인 상권이라 그나마 낫지만 주변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전했다.

오식도동의 자영업자들은 대출에서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이씨는 “은행들이 오식도동에 대해서 ‘락’을 걸어뒀다는 소문이 돈다”며 “정부에서 소상공인 지원한다고 저리로 대출해주는 거 받으러 가봐도 선착순 식이라 헛걸음 치기 다반사”라고 말했다. 조상완 농협은행 군산시 지부장은 “특례보증 제도를 소개하기 위해 오식도동에 가면 1~2억 원이 부족해 어려워하는 자영업자들이 많다 ”며 “자금에 굉장히 목말라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오식도동의 한 카페. 이곳은 과거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었다.(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 “가게 10곳 중 3곳은 폐업”...남은 상권은 수송동뿐 = 타지에서 온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오식도동를 중심으로 터를 잡았다면, 한국지엠과 그 협력사 노동자들의 터전은 소룡동과 나운동이었다.

오식도동과 마찬가지로 소룡동과 나운동에도 타지인들이 많았다. 군산 토박이인 오모(64) 씨는 “산업단지 들어서고 나서 소룡동이나 나운동 주민 10명 중 7명 정도가 익산이나 외국 등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며 “이곳 아파트, 빌라 등 대부분 거주지역도 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오후 9시께 소룡동 먹자골목 전경.(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지난달 19일 저녁무렵 찾은 소룡동의 먹자골목에서도 식당에 앉아있는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 칠성로 주변의 호프집에는 6개 테이블 중 1곳에만 손님이 앉아있었다. 그마저도 가게 주인 장모(50)씨의 지인이었다. 장씨는 “이 거리가 먹자골목이 정말 맞냐”는 질문에 “맞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손님이 꽤 있었는데 작년 지엠 폐쇄 이후로 손님이 싹 다 사라졌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소룡동이나 나운동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7대 3으로 나뉜다”며 “7곳은 매출이 반토막난 곳인데, 1~2곳 정도가 그나마 먹고살 만한 수준”이라며 고 설명했다. 나머지 3에 해당하는 곳들은 이미 문을 닫았다.

나운동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나운동의 상권은 먹자골목인 수송로와, 상가거리인 대학로 나뉜다. 먹자골목은 그 초입에 차병원이 있어 ‘차병원 골목’이라고 불린다. 두 길은 ‘니은’ 자 형태로 붙어 나운동의 주요 상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같은 날 저녁 찾은 나운동의 수송로와 대학로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과거 옷 쇼핑의 ‘성지’였던 대학로에는 운영중인 옷가게보다 임대 스티커가 붙어 있는 가게가 더 많은 상황이다. 군산에서만 33년간 택시운전을 해온 박모(55) 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리 옷가게로 꽉 차 있었고 사람도 넘쳤는데, 지금은 절반이 비어있다”며 “옷가게들이나 상점들은 장사를 접고 수송동으로 많이 옮겨갔다”고 말했다.

▲오후 7시께 나운동 상가거리 전경. 옷가게가 대부분 비어있다.(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박씨의 말대로 지금 그나마 상권이 돌아가는 곳은 수송동, 그중에서도 ‘롯데마트 뒷골목’이라고 불리는 동수송2길 근방이다. 수송동은 나운동 동쪽에 붙어있지만, 오식도동이나 소룡·나운동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도로는 직선으로 뻗어있고, 비슷한 모양과 분위기로 지어진 낡지 않은 건물들이 촘촘이 들어서있다. 이런 차이는 두 지역 거주자들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군산 토박이이자 산업단지 지점에서 10여 년간 근무하고 있는 은행 관계자는 “업체 대표나 임원, 정규직 노동자들은 주로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리를 잡은 오식도동, 소룡동, 나운동과는 다른 거주지를 구하는 동시에, 산단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을 찾았다”며 “수송동이야말로 적임지였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외지인이 적었고, 고용상태가 안정적인 거주자가 많았던만큼 수송동은 공장 폐쇄에 타격을 덜 받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오후 7시께 '차병원 골목'으로 불리는 나운동 먹자골목 전경(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 부동산도 덩달아 침체…‘위기는 곧 기회’투자 열풍도 = 강모(57) 씨는 10년 전 빚을 내 오식도동에 오피스텔 건물을 지었다. 현대중공업이 들어오면서 방은 꽉 들어찼다. 임대수익도 짭짤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임대업자’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공장 폐쇄로 노동자들이 다 사라지자 지난해 방 한 개를 제외하고는 텅텅 비었다. 보증금을 없앤 건 이미 오래. 임대료도 25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낮췄지만 방은 여전히 공실이다. 이대로는 이자비용도 낼 형편도 못됐다. 강씨는 현재 신용불량자가 됐다. 택시와 대리운전 기사 일을 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인구의 감소는 상권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에도 큰 타격을 미쳤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3월 기준 오식도동에서 거래되는 아파트 매물 전체가 시가 1억 원이 채 안 된다. 소룡동과 나운동은 각각 86.7%, 82.5% 수준이다. 나머지도 2억 원을 넘기지 못했다. 또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군산시의 아파트와 연립다세대주택, 단독주택 등을 모두 종합한 ‘종합주택유형’ 매매가격지수는 올 5월 92.3으로 집계됐다. 전라북도 지역은 99.6이었다. 2016년까지 군산이 전북을 앞섰지만, 군산조선소가 폐쇄된 2017년 이후 전북이 군산을 계속해서 앞지르고 있다.

▲텅 빈 오식도동 오피스텔 앞 가꾸지 않은 정원에는 잡초가 무성하다.(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하지만 이런 위기를 틈타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 외지인의 돈다발이 부동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식도동에서는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오식도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요새 값 낮아진 데다가 새만금이니 군산형 일자리니 정부에서 집중적으로 키운다고 언론에 나오니 이걸 기회삼아 건물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이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현재 오식도동의 4층 건물 기준 시세는 4~5억 원 정도다. 만약 압류돼 경매에 나간 물건의 경우 거기서 더 떨어진 2~3억 원 수준에서 거래가 된다.

군산 소재 한 은행 관계자는 “부동산에서도 바람 잡으면서 투자를 독려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식도동을 돌아다녀보면 대부분 건물 매매는 없고 임대밖에 없다”며 “최근 공장 폐쇄 위기 이후 이미 대부분의 건물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식도동 오피스텔에는 임대인을 찾는 문구들이 즐비하다.(군산 = 김벼리 기자 kimstar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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