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가짜장부 中] “정부 눈먼돈 줍줍”... 바지사장 내세워 ‘여성기업’ 행세

입력 2019-06-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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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기업 3만4000개…도매상만 5곳 중 1곳…진짜 여성기업은 매출하락에 '곡소리'

“바지사장으로 여성만 등록해 놓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죠.”

사회적기업 인증을 도와주는 협동조합 ‘신나는조합’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17일 사회적기업 인증 절차를 설명해 주다가 느닷없이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기관 의무구매 제도를 이용하려는 ‘바지만 사장’인 여성기업이 많아지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10일 여성기업의 확인과 등록을 담당하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이날까지 여성기업으로 등록된 기업은 전국에 3만4701개이다.

사회적기업이 2200여 개인 것을 고려하면 여성기업은 그보다 15배나 많은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기업은 단순히 여성사업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 의무구매 제도에 있어 가산점을 부여받는 인증기관을 의미한다.

◇여성 창업 장려제도 악용… 중소벤처기업부 ‘인증절차 허점 노출’ = 여성기업이 많아진 것은 진입장벽이 낮아서다. 상대적으로 사회적기업은 인증에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중간에 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사회적 가치 실현과 거리가 먼 업체들은 미리 잘라낸다. 일정 기간에 따라 사업평가서도 제출해야 한다. 인증 이후에도 원래의 사업목적과 어긋나게 사업을 하면 주관 부처인 고용부는 인증을 취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기업은 인증을 엄밀하게 다루지 않는다. 여성기업을 인증하는 기관인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관계자는 “개인사업자는 여성만 CEO면 (인증)된다”라고 말했다.

여성기업은 법인의 경우 대표권이 있는 2명 이상의 여성 임원이 최대 출자자여야 한다. 그러나 개인사업자면 대표자가 여성이기만 하면 된다. 유통사의 경우는 법인으로 등록할 요인이 없으므로 진입장벽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장평가를 위해 기업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평가위원단을 둘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 의무가 아니다.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여성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를 판단한다”라고 말했지만, 어떤 기준으로 ‘실질’과 ‘지배’의 여부를 판단하는지 알 수 없다. 출자지분에 대한 기준, 그것도 법인에 한정해서만 있을 뿐 다른 계량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과 대만, 인도 등은 여성기업을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미국은 여성기업을 “1인 이상의 여성이 최소 51%의 기업을 소유하는 기업”으로 정의한다. 주식회사의 경우 지분율로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만은 ‘주식’을 보유한 기업 또는 여성이름으로 등록된 기업을 여성기업으로 인정한다. 인도는 기업자본금에 최소 51%를 여성이 투자하도록 돼 있다.

여성기업은 업종에 따른 진입장벽도 낮아 유통사도 가능하다.

소매 및 도매로 등록된 여성기업은 총 6052개로 전체 업종·업태 중에서 두 번째로 많다. 제조업으로 등록한 여성기업(4741개)보다 많았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6304개로 여성기업 인증기관 중 가장 많았는데, 이 역시도 공공기관 의무구매 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중증장애인을 고용해 운영하는 한 사회적기업 관계자는 “일반 사회적기업은 직접 생산한 물건 아니면 도중에 거래가 안 되기도 하는데, 여성기업은 그런 기준조차 없다”고 말했다.

◇여성기업은 추가 인증 수단… “‘진짜’ 여성기업 물건은 안 팔려” = 그렇다면 여성기업이 직접 생산한 물건은 어떤 게 있을까. 한국여성경제인협회는 여성기업이 직접 생산한 물건을 직접 등록하도록 ‘여성기업제품 공공구매’ 누리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조회할 수 있는 여성기업이 직접 생산한 물품은 총 1728개에 불과하다. 주로 건설자재나 미용용품 등으로 한정적이다. 여성기업이 직접 생산한 물건을 유통하고 성장시키겠다는 정책 자체가 유명무실화된 셈이다.

문제는 여성기업이 ‘사회적기업’, ‘장애인표준사업장’ 등 ‘공공기관 의무구매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중복인증수단이 되면서 정부기관이 사회적기업의 인가 망을 촘촘하게 짜도 여성기업 인증을 통해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사회적기업은 유통사로 인가받지 못해도, 별도의 여성기업 인증을 받아 유통사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공공기관 가짜장부] ‘경영평가’ 받고보자… A4용지 파는 회사에 “냉장고 팔아라”>(본지 10일자 3면 보도)의 H사, O사, G사 등이 이처럼 중복인증을 받아 수혜를 받은 유통사다.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은 여성기업이 직접 생산한 물건 혹은 제공하는 용역 및 공사에 대해서만 실적을 잡도록 했다. 이 역시도 사회적기업과 마찬가지로 직접 생산 제품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다만 물품을 거래하면서 이를 실적에 잡을지는 공공기관에 달려 있고, 확인하는 것도 중기부가 아닌 지자체에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해당 기업과 무엇을 거래하든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직접 제조한 물건이 아닌 데도 실적에 담았다면 법률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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