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반도체 산업 육성관련 정부와 기업의 역할

입력 2019-05-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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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대표, 프뉴마 대표

지난해 말 시작된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수출이 5개월 연속 감소하고,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34%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지나치게 반도체에 의존해온 우리 경제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러자 정부와 기업에서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4일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 원 투자, 1만5000명 채용 등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화답해 지난달 30일 삼성전자를 방문, 1조 원의 연구개발 예산과 전문인력 1만7000명 양성 등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시스템 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비메모리의 경우, 정부 차원 육성정책도 필요하지만 발표 내용과 시점에 대해 특정 대기업의 승계 및 대법원 판결을 염두에 둔 정치적 행보와 경제 실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만회하기 위한 정부 입장이 반영된 이벤트성 발표가 아니냐는 비판적 여론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리 경제의 과도한 반도체 의존이 문제이듯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것이 문제이다. 메모리 비중이 3분이 2를 넘어 수요·가격 변화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는 불안한 상황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반도체 비전 2030’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에 나서겠다는 것인데, 여기에 정부가 굳이 나서서 장단을 맞추는 모습은 궁색하다.

정부가 중점을 두고 추진할 일은 따로 있다. 특히 현 정부는 ‘중소기업 하기 좋은 나라’와 ‘일자리 정부’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운 만큼 자립능력이 충분한 특정 대기업에 대한 맞춤형 지원보다는 중소기업 지원과 인력양성·규제개혁 등에 앞장서야 한다.

한편 정부가 해외 기술 유출 방지를 명시한 부분은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칫 중소기업 해외시장 개척 및 기술인력 재취업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산업 스파이 행위는 법규에 따라 엄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중소기업 해외시장 개척을 억압하고 기술인력 및 퇴직 인력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헌법적 규제는 개선해야 한다.

반도체 소자 대기업은 외국 협력 기업에는 요구하지 않는 기준을 국내 중소 협력 기업에 강요하는 관습을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대기업들이 무언의 압력을 통해 협력 기업의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 관행을 없애는 것이 생태계 조성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길이다. 3만 개에 가까운 반도체 중소 장비·부품·소재 업체들의 고용인력이 143만 명임을 감안하면 일자리 창출이 최대 현안인 상황에서 이들 중소업체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세메스, 원익IPS 등 국내 주요 반도체 장비 상장사 10개의 올 1분기 실적을 집계한 결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24.5~135.4% 대폭 하락, 적자로 돌아선 업체도 등장했다. 이들의 실적 감소는 메모리 슈퍼 호황이 끝나면서 대기업이 설비 투자를 줄인 데 따른 것으로 중소 장비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반면 글로벌 시장을 누비고 있는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램리서치·도쿄일렉트론 등 외국 장비사의 경우 반도체 불경기 영향에도 불구하고 1분기 감소폭은 20~30%인 데다 영업이익률도 20%대를 유지했다. 이제 우리 장비 및 부품소재 업체들도 국내 소자 업체에만 의존하는 후진적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수출의존도가 높은데 대기업 위주인 데다 수출 지역과 품목도 다양하지 못하다. 반도체의 경우 특정 대기업 2개가 전체 수출의 20%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중 70%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소자만 수출할 것이 아니라 3만 개에 가까운 중소 장비·부품·소재업체들이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베트남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규제를 풀어, 최우선 국정과제를 조기에 실현시키는 것이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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