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한 번이면 대출...일상을 바꾸는 ‘손 안의 은행’

입력 2019-05-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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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네오뱅크 급성장...밀레니얼 세대 겨냥한 새 서비스도 속속 등장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일부러 은행까지 갈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가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은행의 형태도 변신 중이다.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온라인으로만 사업을 하는 디지털 은행이 대표적이다. 주머니 속 모바일 기기 하나로 돈을 빌리고 갚고, 또 각종 물건을 주문할 수 있게 되면서 삶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고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분석했다.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세대를 위한 ‘챌린저 뱅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챌린저 뱅크는 기존 대형은행의 지배적인 시장 영향력에 도전하는 소규모 특화 은행을 뜻한다. 일찌감치 이 흐름에 올라탄 건 영국이다. 영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네오뱅크’를 보유하고 있다. 네오뱅크는 오프라인 매장 없이 모바일 등 온라인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이다. 2005년 이후 15곳의 네오뱅크가 운영 허가를 받았다. 이들 은행에서 영국 은행권 신규 매출의 3분의 1이 나온다. 네오뱅크의 고객 수와 예금 보유량 증가세가 가파르다.

특히 젊은층의 진입이 두드러진다. 네오뱅크 계좌를 가진 영국 성인이 9%인 반면, 18~23세의 젊은 세대는 15%가 네오뱅크 계좌를 개설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네오뱅크인 몬조는 영국에서만 계좌 수가 160만 개에 달하고 매주 3만 개 이상 증가하고 있다. 또 다른 네오뱅크인 N26은 2015년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현재 유럽 24개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후발주자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이스라엘의 첫 모바일 뱅크인 펩퍼는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지점 방문 없이 계좌 개설이 가능하고 수수료도 받지 않는다. 오로지 모바일 앱으로만 운영이 되는데 페이스북의 ‘피드(Feed)’처럼 자금 관리 정보를 보여주는 기능과 ‘펩퍼페이’라는 송금 기능을 갖고 있다.

펩퍼는 총 고객의 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수만 명이 넘고 신규 고객 증가 속도는 이스라엘의 다른 어떤 은행보다도 빠르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밝혔다.

기존 은행에 도전하는 이른바 ‘챌린저 은행’들의 발빠른 시장 장악은 기술 발전과 함께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통 은행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다. 명성에 기대 새로운 금융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늘려 경쟁을 촉진하는 조치에 나섰다. 2016년 소매금융시장에 더 많은 경쟁이 필요하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오픈뱅킹 규칙을 도입했다. 은행이 제3자에게 계좌 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또 소규모 특화은행의 진입 자본을 500만 유로(약 68억 원)에서 100만 유로로 낮춰 시장 진출을 촉진했다. 2016년에는 규제 샌드박스도 도입했다. 1년에 두 번, 새 상품에 대한 신규 고객 등록이 가능한데 잘못돼도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챌린저 은행들만이 가진 경쟁력도 성장세에 한몫했다. 은행들이 지점을 운영하느라 드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적은 수수료, 경쟁력 있는 금리 및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출 업무에서 외환 거래, 전자화폐 거래 등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새로운 형태의 은행 출현으로 삶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중국의 디지털 은행 덕분에 개인들이 대출받을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기존 은행들은 주로 기업을 상대로 대출 업무를 진행해 왔다. 또한 중산층의 소비 증가도 가파르다. 티켓 예매, 택시 호출, 전기세 납부, 음식 주문 등 생활 구석구석까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 번 거래를 트면 잘 이동하지 않는 특성상, 지점 고객의 이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1년간 은행을 이동한 미국인이 8%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동하지 않는 이유는 만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서비스 경험이 전무해서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마치 차량공유업체 우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택시에 만족했지만 이제는 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아시아 지역에 비해 전파 속도가 느린 미국 등에서도 디지털 은행의 일상화는 이제 시간 문제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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