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주어 따라 달라지는 ‘에’·‘에게’

입력 2019-04-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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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팀장

‘졌잘싸’라는 말이 있다. ‘졌지만 잘 싸웠다’의 줄임말이다. 패했지만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해 만족스러운 수준의 경기를 펼쳤다는 뜻이다. 한국 축구의 경우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전(1986년·2-3 패), 미국 월드컵 독일전(1994년·2-3 패), 한·일 월드컵 4강전 독일전(2002년·0-1 패)을 대표적 ‘졌잘싸’로 꼽을 수 있다.

한국기자협회 축구대회 16강전이 펼쳐진 21일 효창운동장에 응원하러 갔다가 “졌잘싸!”를 들었다. 회사를 대표해 사력을 다한 동료·선후배들를 향한 응원단의 따뜻한 위로·격려의 말이었다. 이날 운동장에선 진 팀, 이긴 팀 할 것 없이 축제를 즐겼다. 16강에서 패한 한국일보의 이준희 사장은 “기대 이상의 경기였다”며 후배들을 토닥였고, 곽영길 아주경제 회장도 “내년에 이기면 된다”면서 선수들을 격려했다. jtbc에 패한 SBS 응원단은 “꼭 우승하세요”라는 덕담을 jtbc에 건네며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신입기자 시절부터 올해까지 31년간 이 대회에 출전한 박선화(스포츠서울 전무) 선배의 이야기엔 작은 감동을 받았다.

경기를 보는 내내 ‘축구는 양보와 희생의 스포츠’라는 생각을 했다.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공을 넘겨줘야 팀이 이길 수 있다. 설사 공을 건네받은 선수가 골을 넣지 못한다 해도 탓하지 않아야 한다. 열한 명의 선수가 소통하고 각자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승리할 수 있는 게 축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투데이 축구 대표팀은 필자를 활짝 웃게 했다. 똘똘 뭉쳐 서로 헌신하고 양보하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도 느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격언을 27일 경기에서도 입증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승 상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우승팀에게 상금을 얼마나 준대요?”, “우승팀에 상금을 얼마나 준대요?”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런데 ‘우승팀에게’와 ‘우승팀에’ 둘 중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일까? ‘에게’와 ‘에’는 주어의 특성에 따라 구분해 써야 한다.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사람이나 동물과 같이 감각·감정이 있는 유정물 뒤에는 ‘에게’를 쓴다. “마을 주민에게 화재 상황을 알렸다”, “구직자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일자리 사업”, “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로봇”, “갓 태어난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처럼 활용하면 된다.

‘에’는 무생물이나 감정이 없는 식물 뒤에 어울린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다양한 지원을 해야 한다”, “세상에 도전하라”, “환경부에 건강역학조사를 요청했다”와 같이 활용한다.

다시 정리하면 사람과 동물, 곤충 뒤에는 ‘에게’를, 국가·기업·학교·단체와 나무·꽃 등 감정이 없는 무정물 다음에는 ‘에’를 써야 한다. 따라서 ‘우승팀’은 단체이니 ‘우승팀에게’가 아닌 ‘우승팀에’라고 해야 바르다.

다만 무생물이나 감정이 없는 식물이라도 ‘사람’처럼 표현했다면 ‘에게’를 쓸 수 있다. 시, 동화 등 문학작품이나 캠페인 주제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달님에게 고백해 봐’, ‘나무에게 말을 걸다’, ‘인공지능에게 미래를 묻다’….

기자협회 축구대회의 열광 뒤엔 아쉬움이 존재한다. 47년째 여자 기자들은 응원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선수로 참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뛰다가 입을 부상의 고통은 본인의 몫이다. ‘운동 중독자’ 소리를 듣는 필자마저도 응원석을 지키는 이유다. 남녀 누구나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을 추가하는 건 어떨까. 운동 경기는 직접 참가해 땀을 흘려야 즐거운 법이다. 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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