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는 와인은 옛말...“돈 벌려면 와인에 투자해라”

입력 2019-04-10 15:04수정 2019-04-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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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와인 1000종 가격 지난 15년간 264% 상승

▲프랑스의 전설적인 와인 양조 거장 앙리 자예르가 만든 포도주들. 지난 2006년 84세로 숨진 자예르가 남긴 포도주 1064병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경매에서 총 3000만 유로(약 383억8000만원)에 낙찰됐다. AFP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특이한 광경이 목격됐다. 이날 경매에 나온 10건의 와인 중 9건이 주인을 찾았다. 최고급 와인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1988’ 12병들이 한 상자는 23만2750파운드(약 3억4672만 원)에 팔렸다. 놀라운 건 가격이 아니었다. 9번의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경매장이 매우 한산했다는 점이다. 이상한 건 또 있었다. 낙찰자들이 와인을 마시려고 경매에 참여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날 경매장의 풍경은 투자 방식이 변하고 있고, 그 중심에 와인이 있음을 보여준다.

와인 투자가 늘고 있다. 특히 인터넷 거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와인 대다수도 온라인을 통해 팔려나갔다. 참여 범위도 국경을 초월한다. 5개 대륙에서 입찰자가 나왔다. 크리스티의 국제 와인 디렉터 팀 트립트리는 “최근 와인 경매 시장에 새로 진입한 고객의 41%가 인터넷을 통해 유입됐다”며 온라인 시장의 열기를 전했다.

또 “와인 구매자들의 61%가 35~55세에 포진해 있다”고 밝혔다. 젊은 세대가 투자 목적으로 와인 시장에 대거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주류 유통회사 베리브로스앤러드(BBR) 판매 책임자 시몬 스테이플스는 “인터넷으로 와인을 구입하는 사람의 85%는 마시려는 게 아니라 돈을 벌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덕에 와인 거래 규모도 급성장했다. 2000년 이후 4배 증가해 4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개인주식 거래량 8000억 달러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성장세는 엄청나다.

사람들의 와인 투자 열풍에 근거는 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와인 투자 이유는 차고 넘친다고 평가했다. 우선, 좋은 품종의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살아난다. 덩달아 가격도 올라간다. 201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1988의 가격은 8만6000파운드였다. 올 3월에 23만2750파운드에 팔린 것을 감안하면 8년 만에 3배 이상 뛴 것이다. 와인 거래 플랫폼인 리브-엑스(Liv-ex)에 따르면 세계적인 고급 와인 1000종의 가격은 지난 15년간 264% 뛰었다. 영국 증시 FTSE100(61%), 미국 증시 S&P500(144%)과 비교해도 수익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또 와인은 주식과 상관관계가 적어 투자 포트폴리오 다각화로도 적합하다. 스위스 호스피탈리티 매니지먼트 스쿨의 필립 마셋은 “투자 포트폴리오에 와인이 들어가면 위험을 낮추고 수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인정했다.

와인 시장의 운영방식 변화도 투자자를 끌어오는 요인이다. 과거 30년간 와인 시장은 로버트 파커라는 와인 평론가 한 인물에 의해 좌우됐다. 그의 말 한마디에 가격이 요동쳤다. 그러나 와인 시장의 풍토가 변했다. 디지털 시대가 만들어낸 변화다. 32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와인 애플리케이션 ‘비비노’는 와인 라벨을 일일이 스캔해 리뷰와 등급을 표시한다. 가격도 비교해준다. 마셋은 “판매자와 구매자 간 신뢰가 형성돼 더 많은 와인과 자금이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투자의 선순환 구조”라고 평가했다.

물론 와인은 다른 금융자산 투자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우선 최종 구매자의 의사가 매우 중요하다. 많은 돈을 주고 와인을 마실 의사를 가진 최종 구매자가 있을 경우에만 가격이 유지될 수 있다. 또 가짜의 위험도 늘 존재한다. 감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인내가 필요하다. BBR의 스테이플스는 “투자 기간으로 5년 미만으로 계획하고 있다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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