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인터뷰] "당신의 마음 통장, 마이너스여도 괜찮나요?"

입력 2019-04-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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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저자, 양창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인터뷰

'착하다'라는 말은 어느새 현대인에겐 '바보같다'는 말이 됐다. 그저 사람 좋게 웃으며, 불합리한 지시를 수행했을 뿐인데 '호구'라고 한다. 그렇다고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자니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흔들리고 싶지 않아도 방법을 몰라 헤매던 이들을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는 '까칠하게 살라'고 조언한다. 덜 감정적이고, 덜 반응적인 '의연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으로 담백한 삶이라는 것이다. 급기야 30만 명의 호응을 이끈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이후 '담백하게 사는 것'이라는 책도 내놨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가 19일 서울 중구 회현동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양 박사는 연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서양의 정신의학만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한계를 느껴 '주역과 정신의학'을 접목한 논문으로 성균관대학원에서 두 번째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의료원 연구강사, 미국 HARBOR-UCLA 정신의학과 방문교수, 서울백제병원 부원장 등을 거쳐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인드앤컴퍼니, 양창순 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양 박사에겐 나를 둘러싼 모든 일에 담담히 미소 짓고, 솔직하게 지금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관계 전문가' 양 박사를 최근 서울 중구 소공로에 있는 마인드앤컴퍼니에서 만났다.

-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고 선언 아닌 선언을 하더니, 최근에는 '담백하게 사는 것'이란 책을 내놓았다. 까칠하게 사는 것과 담백하게 사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방식으로 보인다.

"까칠함과 담백함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요. 불필요하게 상처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적절하게 인간관계 거리도 유지해야 하고요. 또 내려놓을 건 내려 놓는 자세가 까칠함과 담백함이에요. 두 책을 통해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는 이유는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에서는 인간의 핵심심리를 알면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으니, 자신도 상처받을 필요 없고, 상대에게 상처도 주지 않는다고 말해요. 이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죠. '담백하게 사는 것'은 동전의 뒷면이에요. 즉, 내면이요. 까칠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담백해야 하거든요. 내가 담백해야 어디서 멈출지 아는 거잖아요."

-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행위의 변화, '담백하게 사는 것'은 마음가짐의 변화인 거 같다. 책을 들여다보면, 정신과 전문의임에도 스스로를 들여다본다. 책에는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나 작업적으로나 한참을 알아낸 후에야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았다'고 썼다.

"피부가 의사는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좋지는 않지만, 전문의이기 때문에 한 번 더 자기 피부를 들여다보죠. 선크림도 열심히 바를 테고요. 그러니까 피부가 좋잖아요.(웃음) 정신과 전문의도 마찬가지예요. 상담을 하면서 저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돼요. 무엇이 내게 불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하죠. 저도 버려야겠다고 다짐하고요. 책을 쓰면서 이 생각들을 정리하는 거죠."

- 일반적으로 쓰는 행위를 하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인가.

"상담을 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 '말로 해서 내 문제가 해결되느냐'고 물으시죠. 저는 두 가지에서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우리 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누어져 있어요. 언어 중추는 좌뇌에 있고요. 우울하고 불안하면 제일 먼저 효율성이 떨어지는 게 좌뇌예요. 하지만 말을 하면 좌뇌가 다시 자극을 받죠. 얘기를 나누면서 좌뇌가 자극을 받으니까 자신의 문제를 더 생각해보게 되고, 인생을 어떻게 살겠다는 플랜을 세우게 되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상담을 하면서도 저를 되돌아보고, 글을 쓰면서 정리하고요."

-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심리학 테라피'까지 저서들이 굉장히 많다. 책은 주로 어떤 시간에 쓰는 것인가.

"제가 책을 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예요. 제가 정신과 전문의 트레이닝을 받을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정신과 오는 걸 꺼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하고 같이 살아가는 방법이나 인간관계 심리를 배우지 않는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사회에 나오기 때문에 취직을 하든, 연애를 하든 힘든 상황에 직면하곤 하죠. 인간의 심리를 알면 불필요하게 상처받을 일이 없는데 말이에요. 그렇다고 정신과 찾아오는 건 또 쉽지 않잖아요. 그분들을 위해 인간은 어떤 존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마음이 힘들어서 동물을 키우는 분들도 많다.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저는 아무리 바빠도 아침에 키우는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걸요.(웃음) 확실히 정리가 돼요. 흔히들 누군가에게 해줄 때 행복하다는 말을 하죠. 동물은 어린아이와 같아요. 어린아이는 어른이 보살펴주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잖아요. 개도 똑같아요. 주는 기쁨을 느끼게 하죠. 그리고 누군가를 돌본다는 책임감도 들고요. 책임감은 자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해요. 상담을 할 때면 어려운 경험을 극복하신 분들이 결국 자신이 돌봐야 하는 가족들 때문에 극복했다는 말씀도 많이 하세요. 비슷한 마음이에요. 물론 동물이 싫으면 식물을 키울 수도 있고, 외로움 자체를 즐기는 게 좋으신 분들은 그렇게 해도 되고요."

-상담과 책은 누군가의 마음에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참 비슷하단 생각을 해요. 책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정리하거나 비슷한 상황을 통해 공감하게 되잖아요. '어머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네', '내가 겪은 일이야' 라는 생각이 드는 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인간은 결국 자기 중심적인 거죠. 책은 한 권 안에 모든 게 정리된 거예요. 짧은 시간에 정리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죠. 반면, 상담은 내 얘기를 토해 내가 나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상담을 받으시는 분들은 스스로 문제 해답을 알고, 갖고 있어요. 정리가 되지 앟으니모호할 뿐인 거예요. 저같은 상담가는 내담자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정리를 하지 못한 것들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해요. 즉, 상담은 내가 주체인 거고, 책은 남이 쓴 것을 통해 자기 생각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죠."

▲양 박사는 책과 상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상담은 내가 주체인 거고, 책은 남이 쓴 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책이 주는 치료도 상당히 효과적인 것 같다. 독서 치료라는 것도 있나.

"그럼요. 저도 상담하면서 내담자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물어요. 그 선택을 통해 내담자가 현재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 기분이 좋았는지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죠. 책은 간접경험이고 활자예요. 다만 활자가 활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느낌'으로 와 닿아야 해요. 그 활자를 좀더 내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이 상담인 거고요. 정말 느낌이 오면, 그때부터 변화가 이뤄지거든요."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제멋대로 살기'가 아닌 '스스로를 지켜라'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불필요한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게 핵심 주제인 것 같다. '미움 받을 용기'(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 지음)와도 비슷한 것 같다.

"그런 질문 종종 받아요. 비슷한 것 아니냐고요. 저는 자신 있게 말했죠.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창작물이고, '미움 받을 용기'는 정리물이라고요. 일본사람들은 정리를 참 잘해요. 철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사상을 한 권으로 만들어낸 거잖아요. 결국 제 책이나 그 책이나 말하고 싶은 건 '인간관계는 불완전하다'는 것이에요. 아무리 내가 천사처럼 굴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최그 끝난 인기드라마는 결국 시청률 50%를 넘지 못한 채 종영됐어요. 그런데 최고라는 소리를 듣죠. 10%만 넘어도 대박이니까요 그런데 왜 인간관계는 100점을 바라는 걸까요."

-일종의 '100점 콤플렉스'인가.

"많은 이들이 어릴 떄부터 '100점 콤플렉스'를 갖고 있어요. 100점을 받아야 부모님한테 사랑 받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성장해서도 100점이어야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줄 것 같은 마음이요. 우리는 죽는 날까지 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런데,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게 '100점 콤플렉스'예요. 비현실적이라는 걸 깨달을수록 스스로 참 편안해질 거예요. 상대의 평가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까칠함'과 '담백함'도 그런 거예요. 거절할 때를 예로 들어드릴게요. 거절은 자기 중심적으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하면 돼요. 처음 거절할 땐 힘들어도 나중엔 후련할 거예요. 내가 거절했다고 나를 떠나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나를 떠날 사람이니까요."

- 현대인의 고민 지점이다. '예스맨(Yes man) 콤플렉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예스맨으로 살아야 할지 '마이웨이'로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조언해달라.

"옷을 잘입는 사람은 옷을 때와 장소에 맞게 입어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내 주장 해야 할 때는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상대에 맞추는 거죠. 왜 우리는 남들에게 당당하게 요구를 하지 못할까요. 내가 당당하게 얘기하면 나를 싫어할 거라는 피해의식 때문이에요. 전래동화에서 '권선징악'이 나오죠. 나를 학대하는 사람에게도 잘하니까 나중에 잘된 이야기들을 보면서도 영향을 받죠. 또 자기 주장을 해도 괜찮을지 고민해요. 열등감 때문에요. 가정 환경도 영향을 미치죠. 우리 문화는 순응 문화니까, 부모님 말씀에도 '네네'해야 하거든요. 부모한테 대드는 애들이 건강한 애들이에요. 말썽 피운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는 거고요."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양 박사는 최근 '담백하게 사는 것'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는 "까칠함과 담백함은 동전 양면과 같다"며 "까칠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면을 담백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 '마음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마음은 공부하거나 다스린다는 생각을 안 해요. 그냥 타고난 대로 써도 괜찮다고 잘못 생각하죠. 마음 에너지도 성장이 필요해요. 돈 낭비, 시간 낭비는 싫어하면서, 마음은 왜 화내고 불안하면 소비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내 마음의 에너지 통장을 기록해보세요. '오늘은 300원어치 분노를 썼네', '오늘의 분노는 500원' 이렇게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지 마세요. 내 마음 에너지 통장을 플러스로 만들려면 첫째, 내가 내 존재의 의미를 알고 둘째,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때 가능해요. 나랑 결국은 이별할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24시간 함께 있는 '나'라는 존재가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세요. 자신과 연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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