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36. 일본이 ‘넘버1’이 되지 못한 이유

입력 2019-03-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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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연구소장

1964년 도쿄 올림픽 대회 마지막 날 에티오피아의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1932~1973)는 이번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5주 전 맹장수술을 한 전 대회 챔피언인 그의 우승을 점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는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개최국 일본은 이 우승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상식에서 에티오피아 국가(國歌)를 준비하지 않아 대신 자국의 국가를 트는 실수와 결례까지. 이렇게 잘 못 울려 퍼진 국가가 징크스가 되었는지 일본은 지금까지도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못 따고 있다.

마라톤 말고도 일본이 1등을 못하는 것이 또 있다. 만년필이다. 어쩌면 만년필이 마라톤보다 1등을 하기가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1880년대 중반 이미 만년필의 한 종류인 스타이로그라픽 펜을 만들었고, 비록 미국에서 펜촉을 수입했지만 1905년경부터 지금과 같은 펜촉이 있는 만년필을 내놓기 시작했다. 1905년이면 독일의 몽블랑이 회사를 설립하고 만년필을 만들기 시작한 1908년보다 이르다. 또 1910년경 펜촉 끝의 원료인 이리도스민까지 홋카이도에서 발견되면서, 1910년대 중반이 되면 금 펜촉의 완전한 자국 생산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기술과 원료 수급 조건까지 갖춘 일본은 1920년대 금과 은을 뿌려 그림을 그리고 옻칠을 하는 마키에까지 성공하면서, 1930년대가 되면 미국에 이어 만년필 세계의 넘버 2가 된다. 혹시 2등을 영국이나 독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1937년 일본 파이로트가 조사한 것을 보면 영국과 독일은 일본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주요 회사들의 월 생산량을 보면 미국 파커 25만 자루, 영국 마비토드 6만2000자루였고, 독일은 대표 회사 몽블랑의 자료가 없어 아쉽지만, 펠리칸이 3만 자루인 것을 보면 몽블랑 역시 10만 자루는 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파이로트는 20만 자루였다.

▲일본 도쿄에서 3월 13일 개막해 18일까지 열리는 ‘세계 만년필제(祭)’ 포스터.
일본이 1등을 할 수 있던 첫 번째 기회는 일본의 경제 고도 성장기인 1960년대였다. 만년필 역사상 가장 성공한 만년필인 ‘파커51’이 출시된 지 20년이 넘자 서서히 힘이 빠지고 있었지만 대를 이을 만한 뚜렷한 후계자는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1963년 미국과 일본에서 주목할 만한 만년필 두 개가 격돌하듯 등장했다. ‘파커75’와 ‘파이로트 캡리쓰(capless)’였는데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뚜껑이 없고 뒤쪽의 버튼을 누르거나 돌리면 펜촉이 나오는 캡리쓰는 신기했지만, 금속으로 된 몸체와 콤팩트한 크기로 향후 20년간 보편적 표준이 된 파커75를 당할 수 없었다.

만년필의 르네상스 시기인 1980년대는 두 번째 기회였다. 세월에 장사가 없다고 파커75가 지배하고 있던 만년필의 표준은 바뀌기 시작했다. 파커75보다 마디 하나가 더 큰 만년필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잉크 넣는 방식 역시 미국보다 유럽에서 많이 사용하는 피스톤 방식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 표준이 바뀌는 시기에 이전 방식을 고집하였고 재빨리 적응한 몽블랑과 펠리칸이 만년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느 나라가 1등일까? 매년 컬러를 바꿔 엄청난 판매액을 올리는 사파리(Safari) 만년필의 라미가 독일이니 여전히 독일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만, 공기(空氣)는 몇 년 전과 사뭇 다르다. 다시금 바뀔 때가 온 것이다. 독일의 집권이 이어질까, 아니면 미국이 탈환하는 시대가 될까? 미래를 점칠 순 없지만, 확실한 것은 과거 일본처럼 보편성을 무시하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변화 앞에 머뭇거려서는 결코 1등은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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