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만 뉴스 만드나?"...'저널리즘' 영역 넘보는 유튜버들

입력 2019-01-2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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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튜브는 기성 매체와 신(新)저널리스트 표방한 유튜버 '격전 중'

(게티이미지뱅크)

영상은 탄생부터 저널리즘을 동반자 삼아 성장해 왔다. 인쇄술과 영상촬영 기술이 발명된 이래로 미디어의 양대 축이 ‘신문’과 ‘방송’에서 바뀐 적이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때문에 2010년대 말인 현재 가장 뜨거운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기성 언론들이 앞다투어 뛰어드는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이미 지상파 방송3사는 물론이고 유력 일간지, 군소 인터넷 언론 등 대다수의 기존 언론이 떠오르는 유튜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다수의 신문과 방송들은 유튜브를 통한 뉴스 공급에도 뛰어들고 있다. (출처=유튜브 캡처)

하지만 유튜브엔 저널리즘의 문을 두드리는 또 하나의 신흥 세력이 있다. 사실 방송, 신문, 인터넷 매체 등의 기성언론이 새로운 정보유통 채널을 찾는 현상은 ‘새로운’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긴 어렵다. 이보다는 뉴스 유통망의 다각화라고 해석하는 편이 적절해 보인다.

반면, 영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저널리즘은 언론엔 전혀 뜻을 두지 않았던 이들로부터 탄생하고 있다. 과거 취미로 영상을 찍던 유튜버들이 이젠 사회 각계각층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대해 정보를 전달하고, 논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시작은 문화 콘텐츠 리뷰어, ‘탑텐충’부터

그 시작은 리뷰였다. 영화 리뷰, 게임 리뷰, 애니메이션 리뷰 등… 현재도 그렇듯 유튜버들이 문화 콘텐츠를 리뷰하는 영상은 유튜브에서 매우 많이 생산되고, 그만큼 소비되는 콘텐츠 중 하나다.

리뷰 영상 중 가장 대중적이었던 포맷은 ‘순위 매기기’다. 어떤 콘텐츠에 대해 특정한 기준을 세워 1위부터 10위 정도까지의 순위를 매겨보는 포맷. 이것은 이미 ‘재용이의 순결한 19’, ‘강용석의 고소한 19’, ‘남자공감 M16’, ‘차트를 달리는 남자’ 등 기성 매체에서 숱하게 성공사례를 남겼던 포맷으로 대중적인 검증을 마친 상태다.

▲특정 분야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포맷의 영상은 사진에 있는 기성 방송에서의 프로그램들처럼 그 대중성을 충분히 검증받은바 있다. (출처=유튜브 캡처)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획과 편집이 간편한 데다, 빠른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이 영상 생산자인 유튜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른바 ‘탑텐충(’순위 매기기 TOP10‘ 포맷의 영상을 생산하는 유튜버들을 폄하하는 신조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BBC 선정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TOP10’, ‘역대 한국 영화 제작비 순위 TOP10’, ‘접속자 수 기준 스팀 인기 게임 TOP10’, ‘용량이 가장 큰 게임 TOP10’ 등 객관적인 지표에 기반한 ‘순위 매기기’ 영상도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흔한 유튜브의 순위 TOP10 영상들. 가장 흔한 형태의 리뷰 포맷이다. (출처=유튜브 캡처)

‘제가 보기에’라는 단서 조항과 함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로맨스영화 TOP10’, ‘보고 나면 찝찝한 기분이 드는 찜찜한 영화 TOP10’, ‘역사상 가장 최악인 게임 TOP10’과 같은 개인의 주관적 평가를 전제로 만든 영상도 많이 등장했다.

‘탑텐충’은 경멸하여 일컫는 멸칭(蔑稱)이다. 이 멸칭은 많은 유튜브 시청자들이 ‘순위 매기기’ 포맷에 식상함을 느꼈기 때문에 생겨났다. 이런 피로감을 극복하기 위해 요즘엔 아예 기성 영화 관련 잡지·방송이나, 게임 리뷰 매거진 등에서의 리뷰와 마찬가지로 단일 콘텐츠를 집중 분석하는 영상까지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저명성’이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기성 문화 미디어와 유튜버의 역할을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영화 리뷰 유튜버 ‘김스카이의 하늘담’의 영화 ‘리얼’ 리뷰 중 한 장면. 영화 리뷰 유튜버들은 기존 영화 평론가들에 비해 수위가 강한 평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출처=유튜브 캡처)

유튜브의 리뷰어들은 기성 문화 미디어보다 파급력이 덜하고 그 책임 또한 약한 만큼 객관성과 중립성에서 자유롭다. 유튜브 리뷰어들이 해당 콘텐츠 업계의 종사자인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콘텐츠 생산자와 이해관계도 얽혀 있지 않다. 이런 특성상 기성 매체와 비교할 때 보다 속 시원하고 통렬한 비판이 가능하다.

콘텐츠 소비자 입맛에 더욱 착착 감기는 촌철살인의 비판! 기성매체가 짐짓 몸을 사리느라 우리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던 그 통쾌함! 이런 쾌감은 주력 콘텐츠를 문화에서 시사로 바꾸었을 때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온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또 다른 유튜브 신(新)저널리즘의 한 지평을 열게 되는데, 바로 ‘이슈충’의 등장이다.

◇‘이슈충’에서 ‘백분토론’까지

‘이슈충’. 어떤 이슈만 터지면 재빠르게 해당 이슈를 여러 근거자료와 자신의 판단을 더해 현상을 분석해 영상을 내놓는 유튜버들을 일컫기 위해 만든 이름인데, 역시 멸칭이다.

관심이 쏠리는 이슈에 관해 무분별하게 질낮은 영상을 양산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멸칭까지 붙었지만, 개중에는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영상을 제작한 유튜버들도 많다. 정치 성향과는 전혀 무관한 유튜버였더라도 본인이 해당 이슈에 관심이 있고, 많은 이들이 관심 가질 사안이라면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이들의 경향이다.

▲뷰티 유튜버 ‘에바’(사진 위)는 지난해 1월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영상을 공개했다. 게임 유튜버 ‘액시스마이콜’는 지난해 5월의 혜화역 시위에 참석해 현장 실황을 알리는 영상을 촬영했다. 모두 시사와는 상관없는 유튜버 개인이 사회 이슈에 대해 내놓은 견해와 논평이었다. (출처=유튜브 캡처)

구독자 68만여 명의 뷰티 유튜버 ‘에바’는 지난해 1월 업로드한 ‘The feminist 페미니스트?’라는 영상에서 그가 살아오며 경험해 온 여성 차별과 현재 페미니즘의 흐름을 긍정하는 입장을 밝혔다. 에바는 헤어나 화장품 등의 뷰티 콘텐츠, 혹은 자취일기나 대학생활 등의 일상 영상과 같이 사회 이슈와 무관한 내용을 다루던 유튜버였다.

비슷한 수인 63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마재TV’를 운영하는 ‘액시스마이콜’도 2014년경부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를 방송하던 게임 방송인이었다. 그는 지난해 5월 ‘혜화역 시위’ 현장을 생중계하면서 시사 이슈로 콘텐츠 영역을 확장했다. 이후 ‘액시스마이콜’은 안티 페미니스트라는 기치를 내걸고 아래 페미니즘 이슈에 관한 토론 및 분석하는 영상을 다수 제작했다.

▲스스로를 반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유튜버 ‘윾튜브’와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데블스TV’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서로 상대방의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영상을 게재한 바 있다. (출처=유튜브 캡처)

최근엔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유튜버들이 영상을 통해 논쟁을 벌이는 경우도 흔해졌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데블스tv’의 운영자 김영빈 씨는, 반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유튜버 ‘윾튜브’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격한 언쟁을 벌였다. 양 측은 각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통계지표와 과거 발생 사건·사고 등을 인용하며 서로에게 날 선 비판을 주고받았다. 일반적인 미디어에서 사용되는 비판의 강도를 훨씬 넘어선 수위였던 것은 당연하다.

방향성 설정, 현장 상황 중계, 사실관계 점검, 인물 비판까지 이어지는 이슈 대응. 사실상 언론에서 수행하고 있는 역할과 차이점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비로소 기성 언론과 ‘유튜브 저널리스트’들의 구분이 완전히 사라진, 정말 새로운 저널리즘의 시대가 열린 것일까?

◇신 유튜브 저널리즘, 가능성과 한계

확실히 유튜브 저널리즘에는 기성 매체가 가질 수 없는 장점들이 있다.

먼저 심리적 장벽이 비교적 낮다는 점이다. 보수나 진보 성향을 뚜렷이 가진 기성 매체가 유튜브에 송출한 영상은 정치 이슈를 꺼리는 사람들의 거부감을 사기 쉽다. 반면 뷰티 유튜버나 게임 유튜버, 혹은 가볍게 이슈를 설명해주는 포맷을 차용한 시사 유튜버들의 경우 정치 성향이 옅은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신뢰도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제약이 따르는 기성 매체보다 훨씬 자유로운 평론이 가능하다는 것도 유리한 지점이다. 유튜브 저널리스트들의 발언에는 기성 매체가 제공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존재하기 때문에 수요자들의 구미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하기가 훨씬 쉽다.

하지만, 유튜브가 가진 한계점들도 많다.

신뢰도와 공정성 추구는 사실 기성 매체의 운신 폭을 좁히는 제약이기도 하지만, 기성 매체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실제로 시사 이슈 유튜버 대부분은 판단 근거를 제시할 때 대부분 기성 매체의 뉴스를 인용하고 있다. 이는 아직까진 정보의 신뢰도에 있어서 기성 매체에 견줄만한 콘텐츠 생산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 하나의 분명한 차이점은 ‘새로운 사실’이다. 뉴스(News)는 본래 어원부터가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다. 기성 매체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새로 발굴된 사실’의 보도를 유튜버가 시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보 전달의 최일선에 서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직업은 아직까진 기성 매체에 소속된 기자다. 중요한 이슈 발생 시 기자회견이라는 이름의 브리핑을 갖고, 대형 관공서나 기업들엔 기자실이 존재하고, 사회 각계의 사건사고 제보가 기자들에게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유튜버회견’, ‘유튜버실’이 생겨나거나 유튜버들에게 사건사고 제보가 빗발치기 전까지는 정보 접근 측면에서 기성 매체의 우위는 바뀌기 힘들다.

▲이미 기성매체는 자회사 설립이나 별도의 연성 콘텐츠 팀을 편성해 뉴미디어의 적응을 꾀하고 있다. 사진은 SBS의 웹 콘텐츠 채널 ‘모비딕’의 소개 페이지 (출처=모비딕 사이트)

저널리즘의 기존 세력인 신문과 방송도, 신 세력인 유튜버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자신의 장점을 더 부각시키는 한편 서로의 장점을 빠르게 흡수해가고 있기도 하다.

기존 매체의 이름으로는 공정성과 신뢰도를 포기할 수 없는 신문과 방송은 자회사를 차리거나 별도의 팀을 편성, 기존의 정보 전달보다 수위가 높고 재미에 더 역량을 쏟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것. 또한 유튜버들은 분야의 전문가를 자신의 방송에 출연시켜 정보의 질을 높이는 한편, 이슈가 발생하면 기자보다 빠르게 카메라를 들고 나가 현장의 소식을 전하는 모습이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의 저널리즘은 이제 막 개척되기 시작한 새로운 흐름이다. 때문에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시기상조다. 다만 보다 발 빠르게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장점까지 흡수할 수 있는 쪽이 제1의 정보전달자로서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 만큼은 확실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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