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는 ‘은행원’이 되게 하소서”…희망퇴직 조건에 제조업 직원 한숨만

입력 2019-01-1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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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노동조합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총파업을 선포하고 있다. 노조는 “이날 총파업은 경고성 1차 총파업이다”라며 “노사간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순차적으로 파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승현 기자 story@

“다음 생에는 은행원으로 태어나고 싶네요.” 최근 은행권의 희망퇴직 조건을 본 제조업 한 직원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주변에 희망퇴직으로 떠난 동료들을 봤는데, 조건에서 너무 차이가 나는 거 아닌가 싶다”고 푸념했다.

최대 39개월치 급여, 5000만 원의 자녀 학자금, 창업지원금, 건강검진비 등. 국내 주요 은행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내건 조건이다.

KB국민은행 등 주요 은행이 파격적인 희망퇴직 조건을 내걸면서 제조업 종사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희망퇴직을 받으면서 특별퇴직금을 종전보다 3개월 늘린 39개월 치를 주는 것은 물론 퇴직 후에도 자녀 학자금에다 1년간 본인과 배우자 건강검진 비용까지 주기로 했다.

본인이 원하면 1년이 지난 후 계약직으로 다시 채용까지 해주기로 하는 등 파격 조건을 내세웠다. 게다가 대상자가 53~54세라 사실상 정년을 앞두고 3억~4억 원을 챙기는 셈이다.

KEB하나은행 역시 15일 임금피크제 진입을 앞둔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올해 만 55세가 되는 1964년생 직원이 대상자 이며, 특별퇴직자로 선정되면 임금 약 31개월 치에 해당하는 특별퇴직금을 받는다.

출생한 달에 따라 최대 5개월 치 임금을 더 줄 수도 있다. 자녀 학자금, 의료비, 재취업·전직 지원금도 지급된다.

반면 제조업 희망퇴직의 경우, 이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희망퇴직을 받았던 LG디스플레이는 5년 차 이상 생산직 직원 대상으로 고정급여의 36개월 치를 위로금으로 지급했다.

희망퇴직을 선택한다면, 한창 일할 나이에 3년 치 고정급만 받고 나오게 되는 것.

금호타이어는 희망퇴직 위로금이 근속연수와 남은 정년기간을 함께 고려해 산정한다. 18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18개월 치 임금을 위로금으로 받고, 16년 이상 근속자들은 16개월 치를 지급하는 식이다.

자동차 쪽은 24개월이 위로금의 정설이다. 다만 지난해 한국GM이 군산공장 폐쇄와 희망퇴직 동시에 치르면서 다급해서인지 직급별로 36개월 치 월급 지급한 사례도 있다.

수출 중심의 A기업 한 직원은 “같은 희망퇴직인데 퇴직 나이와 위로금 등에서 너무 차이가 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며 “최근 글로벌 경기가 어려운데, 해외 업체들과 경쟁하는 수출기업으로서 국내 금융회사를 보면 다소 괴리감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시중금리가 상승하면서 연체율이 높아지고, 경기 하강으로 국민의 삶이 팍팍해지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금융회사들의 ‘퍼주기’를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확실히 희망퇴직금을 많이 주는 느낌이 든다”며 “이번 퇴직조건을 보면서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얼마든 줄테니 제발 나가라는 듯한 인상을 받아 갑을 관계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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