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수능 치르는 날엔 사랑을

입력 2018-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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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팀장

경남 남해 보리암, 강원 양양 낙산사 홍련암, 경기 강화 낙가산 보문사는 ‘입시 기도의 성지’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 후 소원을 이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는 곳들이다. 특히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100일간 지극정성으로 기도한 뒤 대업을 이뤘다는 보리암은 ‘최고의 기도처’로 손꼽힌다. 2019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을 열흘가량 앞둔 지난 주말 이곳을 오가는 도로가 유난히 막힌 이유다.

경북 경산 팔공산 갓바위 부근도 인산인해였다. 이곳 부처의 머리 위 갓이 대학 학사모처럼 보여 입시에 영험하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이맘때면 갓바위를 붙들고 기도를 하거나 동전을 붙이며 자녀의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디 이곳뿐이랴. 전남 여수 향일암, 서울 강남의 봉은사에도 요즘엔 인파가 넘친다. “극성”이라며 눈을 흘기는 이들도 있지만, 자녀를 따라다니며 일일이 간섭해 붙여진 ‘헬리콥터맘’보다는 ‘기도하는 부모’에게 훨씬 더 공감이 간다.

대학 입시 경쟁이 치열했던 해를 꼽으라면 1990학년도 학력고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주민등록상 1971년생 돼지띠들이 겪은 일로, 그해 태어난 인구가 가장 많아서다. 돼지해에 태어나면 복이 많다는 속설 때문이리라. 당시 학력고사 경쟁률은 전기대 4.57대 1, 후기대 4.6대 1. ‘선(先)지원 후(後)시험제’로 치러졌지만 가족은 물론 친인척들도 나서서 원서 마감 직전까지 치열하게 ‘눈치작전’을 폈다. 2018년 현재 1971년생은 94만4179명, 그해 태어난 아이는 102만4773명으로 92.1%가 생존해 있다.

입시만큼 모진 제도가 있을까. 즐거워하는 이는 소수, 많은 이들은 실망하게 마련이다. 결과가 어떻든 시험을 치르는 존재는 너나없이 소중한데 말이다. 시험은 ‘치르다’뿐만 아니라 ‘보다’, ‘치다’ 동사도 쓸 수 있다. ‘보다’의 경우 시험을 뜻하는 목적어와 함께 쓸 경우 ‘자신의 실력이 나타나도록 치르다’의 의미이다. 치르다는 ‘무슨 일을 겪어 내다’라는 뜻의 동사로, 시험뿐만 아니라 잔치·장례식·결혼식·선거·곤욕 등에도 어울린다. 또 대가·계약금·잔금·선금(주어야 할 돈을 내주다, 지불하다는 의미), 아침·점심(아침·점심 등을 먹다는 의미) 등 다양한 단어와도 연결해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치르다를 ‘치루다’로 잘못 알고 쓰는 이들이 많다. 이 경우 용언의 기본형을 잘못 알고 있으니 활용형도 ‘치루니’, ‘치뤘다’처럼 틀리게 쓸 수밖에 없다. 우리말에 ‘치루다’는 존재하지 않는다. 치르다는 치르고, 치러서, 치르니 등과 같이 ‘으’불규칙 활용된다. 따라서 어미 ‘-어’가 올 때는 ‘-으’가 탈락해 흔히 ‘-러’로 발음되니 주의해야 한다. “잔금을 치러라”, “기념식을 치러라” 등으로 쓰면 된다.

힘들게 달려온 수능 레이스에 마침표를 찍을 날이 눈앞이다. 부모들도 애가 타긴 마찬가지일 터. 그래도 “시험 잘 봐” “정신 똑바로 차려”라고 말하지 말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 “사랑한다” 등 부드럽고 따뜻하게 격려하자. 먼 길을 완주했으니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 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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