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이끄는 여성리더③] 신용현 "네트워킹은 곧 힘…'딴짓' 하는 여성이 되어야"

입력 2018-10-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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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출신…'과학기술계 대표'로 여권 신장에도 앞장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신용현(58) 바른미래당 의원은 1984년부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일하면서 연구에만 몰두해온 현장 토박이다. 여성 최초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을 역임하던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제2의 과학기술 혁명'을 당의 기치로 내세우면서 '국민의당 비례대표 1번' 명찰을 달고 국회에 입성했다.

처음부터 정치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권과 과학기술 현장 사이에 통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게 자신의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 '어쩌다' 국회의원이 됐다는 그는 명실공히 국회의원 헌정대상을 2년 연속 수상한 실력자다. 특히 야당 의원 중 종합평가 1위를 차지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합리적 감시자임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5일에는 '바른미래당 국정감사 3일차 우수 국정감사 의원'으로 선정됐다.

국정감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신 의원을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신 의원이 소속된 국회 상임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다. 그는 "과학기술계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각오를 하고 의정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후반기 국회도 1,2,3순위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겸임 상임위로는 여성가족위원회를 써서 냈다.

"두 상임위 모두 인기가 없는 상임위여서 1,2,3순위로 써서 낼 필요는 없었어요.(웃음) 사실 사람들이 상임위를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성가족위를 가게 해달라고 원내대표한테 부탁까지 했어요. 숙제를 다 못했다는 느낌이 있어서요."

전반기 국회에서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사람 중심 연구환경 기반을 만드는 일에 주력했다. 이동통신 단말기 자급제, 지원금 분리공시제 등 가계통신비 절약을 위한 입법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신 의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신 의원은 국회에 입성하고 각종 여성 이슈를 마주하면서 상당히 큰 죄책감을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신 의원은 자신의 전공 분야인 과학기술 외에도 여성 분야와 관련해 활약을 펼치고 있다. 여성가족위원으로서 성별격차를 해소하고, 돌봄노동의 가치를 올바로 매기는 데 역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국회 들어오기 전까지 제가 생각했던 여성 이슈는 '일하는 엄마나 전문직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제 능력을 발휘하는 것',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하는 것' 정도였어요. 전문직 여성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많이 고민했거든요. 막상 국회에 와서 보니 제가 눈 감고 있던 분야가 너무나도 많았던 거죠. 현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 속이 정말 편치 않아요."

위안부 할머니 문제,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의 노동,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해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 등 각종 여성 이슈를 직접 보기 시작하면서 죄책감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신 의원은 "요즘 제가 목소리를 내는 여성 이슈에는 더 큰 차원에서 여성의 삶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했다.

여성 과학자였던 그 역시 견고한 '유리천장'을 절감했다. 한 아이를 둔 워킹맘으로서 일과 가정을 병행할 때 '피도 눈물도 없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매정하게 떼어놓고 출근해야 했어요. 아이가 네 살 때 굉장히 크게 아팠어요. 뇌수막염이 왔다가 뇌염까지 가는 바람에 굉장히 애를 많이 먹었어요. 사람들은 '괜찮아. 엄마가 키우는 애들도 아파'라며 위로를 하는데, 엄마가 옆에 있지 않아서 아프단 말이 전제인 거잖아요. 아이가 크고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일·가정 양립을 위해 활동했어요. 여성 과학기술인이 동시에 겪는 일들이잖아요."

신 의원이 연구소에 다니던 1993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가 발족했다. 비슷한 처지의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힘을 합쳐 만든 우리나라의 첫 여성 과학자 단체다. 이 단체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2000년대 초반 여성 과학기술 인력을 지원·육성하는 정책을 펼 때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가 중심이 됐다.

신 의원은 2001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총무이사를 맡아 정부·기업을 상대로 다양한 대외업무를 펼쳤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2월 '여성과학기술인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때 신 의원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권익을 증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02년에 통과된 법안은 IMF 이후 여성 과학기술인을 많이 육성하고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어요. 국가경영진단을 받았을 때, 은행 통폐합보다 위의 권고사항이 '대한민국이 국가경쟁력을 가지려면 여성 이공계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교육을 받은 우수 인력이 많은데 활용이 안 되고 있으니까 여성들에게 가점을 줘서 활동을 장려하자는 거죠. 그런데 채용할당제로 '열 명 중 한 명은 여성으로 뽑으라'라고 지침을 내렸을 때 실무에서 반발이 굉장히 심했어요. 각종 위원회에 여성을 30% 이상 넣으라고 했는데, 욕 무지하게 많이 먹었습니다."

연구 외에도 여성 과학기술인의 권익을 위해 벌였던 각종 활동이 국회 입성으로 이어졌다. 위원회 활동은 네트워킹이 되어 대형 연구과제를 따내는 데 도움이 됐다. 이후 더 큰 대형 과제의 책임자가 될 수 있었고,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원장이 됐다는 것이다.

▲신 의원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권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총무이사를 맡기도 했다. 그는 "여성이 더 큰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네트워킹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을 아는 건 아주 큰 힘이에요. 옛날에는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두문불출해야 연구 잘한다고 하지만, 요즘은 소통이 제일 중요해요. 새로운 기술이 뭐가 있는지 다른 사람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재빨리 알아야 하거든요. 남성들은 군대, 동기 문화 덕분에 네트워킹이 잘 되는데, 여성들은 일부러 신경쓰지 않으면 네트워킹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내가 매일 만나지 않는 사람을 만났으면 해요."

'책상을 잠시 떠나라'라는 조언이 '모범생이 될 필요는 없다'와는 다르다고 했다. "여성들이 자기 업무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실무 관련 교육을 받을 때, 남성은 조직관리, 리더십, 인력관리를 배워요. 여기서부터 게임이 안되는 거예요. 성인지 교육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에요. 네트워킹을 키우는 활동을 하는 게 모범생이 아닌 것도 아니잖아요. 여성 과학기술인도 책상에서 연구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을 만나 네트워킹을 키워야 해요. 여성들이 자신이 가진 공감능력을 토대로 더 넓은 주위를 둘러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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