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주열’, 이주열의 역주행하는 다섯 가지 소통방식

입력 2018-10-15 11:40수정 2018-10-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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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고·안하고·대체하고·사전조사하고·마사지하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소통 방식이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전에 준비된 발언만 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던 박근혜 전 대통령 방식으로 역주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올 들어 대외 인사들과의 접촉을 줄이고, 예정에 없는 갑작스런 질문엔 아예 답을 하지 않고 있다. 모두발언을 서면으로 대체하는가 하면, 예정된 회견에서도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사전 조사를 하는 중이다. 더 나아가 모두발언이나 질의응답과 관련한 녹취록 파일을 배포하면서 소위 마사지까지 했다.

(한국은행, 이투데이 정리)
◇ 외부 전문가와의 소통 대폭 축소 = 이 총재는 경제동향간담회와 금융협의회를 올 들어 단 한차례 개최하는데 그쳤다. 경제동향 간담회는 경제연구원(소)장이나 경제단체 임원 및 대학교수를, 금융협의회는 시중 은행장을 각각 한은으로 초청해 조찬을 같이하면서 이런저런 경제현안을 공유하는 자리다.

모두 2002년 처음 시작해 전임 김중수 총재 당시까지만 해도 매월 열리다시피 했던 행사다. 이주열 총재가 취임한 2014년 4월 이후부터 횟수가 줄기 시작하더니 지난해엔 각각 4회와 3회로 줄었다. 한은은 이 총재가 3월말 퇴임 예정이었던데다 예상치 않은 연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은행장들이 검찰의 각종 혐의선상에 오르내리면서 간담회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반면 이같은 설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신뢰성이 떨어진다. 우선 전임 김중수 총재 퇴임이 있었던 2014년 3월말을 전후로도 김 총재와 이주열 총재가 활발히 간담회를 진행한 바 있다. 또 한은이 이같은 해명을 처음 내놨던 6월 전국은행연합회는 오히려 이주열 총재를 연합회로 초청해 은행장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은행장만 12명이 참석했고, 이 총재를 비롯해 은행연합회 사원기관장과 유관기관장 등 총 19명이 참가했다.

한은은 다음달 2일 올해 첫 금융협의회를 가질 예정이다. 다만 한은은 향후 협의회는 반기에 한 번씩 연2회, 간담회는 그때그때 일정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열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앞서 이 총재는 전임 김중수 총재 당시 신설했던 업계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 비은행 금융기관 CEO 협의회, 비은행 금융협회장 협의회, 투자은행 전문가와의 간담회를 모두 폐지한 바 있다.

◇ 공급자 위주 소통 ‘필요할 때만’ = 한은 출입 기자들은 최근 들어 이 총재를 보기가 부쩍 힘들어졌다. 한은이 필요할 때 외에는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민감한 시기 기자들이 총재 출퇴근 시간을 예상해 한은 1층 로비에서 소위 뻗치기라도 할라치면 이 총재는 아무 답변을 하지 않는다. 이 경우 일부 매체만 소위 단독성 기사를 줄 수 있고 그러면 언론사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게 한은측 설명이다.

한은은 현재 한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기에만 이 총재 출근길 인터뷰를 사전 공지한 후 취재에 응하고 있다. 이같은 행태는 이 총재가 연임되기 전인 지난해까지만 해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또 4일 올 들어 처음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모두발언을 사상처음으로 서면으로 대체했다. 외부 인사들을 불러놓고 총재 주변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있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게 한은측 설명이다.

한은 정책은 기획재정부와 달리 통상 정적이다. 통화신용정책이라는 큰 칼을 휘두른다는 점에서 한은 정책을 소위 항공모함의 움직임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때문에 총재의 말 한마디 한마디와 악센트(톤), 손짓몸짓, 표정, 심지어 넥타이 색깔까지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는게 보통이다.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 등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의 부동산발 금리인상 주문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A4용지 한 장에 900여자 분량의 모두말씀 글로는 무엇을 강조하려는지 알기 어렵다. 실제 이날 모두말씀 글에는 투자 심리를 제고해 지속 성장 기반을 강화, 금융불균형을 점진적으로 해소, 성장잠재력과 일자리 창출능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 등 다양한 이슈가 병렬적으로 나열됐다. 민감한 시기 어디에 중심을 둘지 모를 글들의 나열로 회피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줄이고·안하고·대체하고·사전조사하고·마사지하고 식의 소통이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진은 5일 저녁 인천시 서구 심곡로 한은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기자단 워크숍에서 이 총재가 모두발언과 질의응답을 하는 모습.(한국은행)
◇ 사전 질의내용 파악은 물론 언급 마사지까지 =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 직후 갖는 기자회견, 금리결정 금통위를 연 8회로 줄인 후 총재 기자회견 축소를 대신해 열리는 오찬, 필요시 출근길 인터뷰, 연중 각각 한번 있는 인천 인재개발원에서의 기자단 워크숍과 송년회 등 총재가 직접 나서는 질의응답에서 한은은 사전에 어떤 질문을 할지 묻는게 일상화되고 있다. 중복 질문을 피하고 사전에 질문을 받아 충실한 답변을 하기 위함이라는게 한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2016년 5월 이주열 총재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도 이 정부(박근혜 정부)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당시 금통위에서 그 취지를 묻는 기자 질문을 사전에 막아선 후 강화되는 양상이다.

5일 인천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기자단 워크숍에서는 질문자를 2~3명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만찬 직전이라고 하지만 이 워크숍의 기본 취지가 총재와의 허심탄회한 소통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망스럽다. 실제 김중수 전 총재 재임시까지 만해도 총재와 기자단간 한 시간 넘는 자유토론이 진행됐었다.

특히 이번 워크숍 후 한은이 배포한 모두말씀과 질의응답 녹취록 자료에는 없는 말도 생겨났다. 이 자료에는 한은 관계자가 마지막에 “더 이상 질문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질의응답시간을 마치겠습니다”로 돼 있다. 반면 실제는 “그럼 이상으로 질의응답시간을 마치겠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많으시겠지만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였다.

이는 제 3자가 볼 경우 2~3명의 질문자만 있어 질의응답을 끝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애초 한은이 질문자를 2~3명만 받겠다는 것은 온데간데없는 것이다. 이 녹취록에는 앞서 질문자를 2~3명만 받겠다고 한 것과 3번째 기자 질문 전에 “마지막 질문 받겠습니다”라는 말은 쏙 뺐다.

이와 관련해 한은은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한은 관계자가 마지막에 하던 언급을 이번 녹취록 자료에 붙여 넣은 단순실수라며 의도를 갖고 바꾼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은은 그동안 쌍따옴표 안에 들어간 기사 자구 한자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수정을 요구하곤 했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금통위 기자회견 녹취록 언급을 갖다 붙이는게 되레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미국 연준(Fed) 금리인상과 관련해 이 총재가 가진 출근길 기자회견 녹취록에서도 당시 이낙연 총리 언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 질문과 오늘은 그 얘기를 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취지의 총재 언급도 빼버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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