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드는 신남방정책] ‘93세 재집권’ 마하티르 말레이 총리는 누구

입력 2018-08-2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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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5배 끌어올린 ‘말레이 근대화의 아버지’

▲올해 6월 11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24회 아시아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도쿄/로이터연합뉴스

올해 5월 9일(현지시간) 치러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93세의 나이로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이후 첫 정권 교체를 이뤄 낸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는 가난한 농업 국가였던 말레이시아를 제조업 강국으로 변모시킨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1925년 영국 식민 치하의 말레이반도에서 태어나 의사가 된 그는 1957년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1969년 툰쿠 압둘 라만 당시 총리가 중국계의 경제적 지배에 짓눌린 말레이계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다가 한때 정계에서 축출됐으나, 1972년 툰쿠 총리의 사임으로 복귀한 뒤로는 각부 장관과 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1981년 후세인 온 총리가 건강 악화로 사임하자 총리직을 승계했고 이후 2003년까지 22년간 장기 집권을 이어갔다.

이 기간에 그는 경제성장을 먼저 이뤄낸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동방정책과 말레이시아를 2020년까지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겠다는 ‘와와산 2020’ 등을 주창하며 강력한 국가 주도 경제발전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는 1990년대 들어 신흥공업국 대열에 올라섰고, 국내총생산(GDP)도 1981년 250억 달러(약 27조 원)에서 2003년 1100억 달러(약 120조 원)로 대폭 증가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일축하고 고정환율제 채택, 외국자본 유출 금지 등 독자적 조치로 경제를 회복시킨 점도 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사법부를 정부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등 독재와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미주의적 태도로 서방과 줄곧 마찰을 일으킨 것과 ‘부미푸트라’로 불리는 말레이계 우대 정책을 고수해 중국계와 인도계를 차별한 것도 실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도 말레이시아 국민 사이에선 다시 정권을 잡은 마하티르 신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이다. 실제로 현재 많은 국민이 마하티르 총리를 말레이시아를 구하기 위해 과거에서 돌아온 구원자적인 인물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마하티르 총리의 업적과 더불어 전 집권자인 나집 라작 총리의 부패 의혹과 민생 악화 등에 대한 불만도 마하티르 신정부 출범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나집 총리는 2015년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수조 원의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휘말린 이후 지도력이 크게 훼손됐다. 중국의 성장 둔화와 저유가 장기화로 국내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한국의 부가가치세격인 6%의 물품용역세(GST)를 도입하고 석유 보조금 등을 폐지해 서민의 생활이 팍팍해진 것도 그의 인기 하락에 영향을 줬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마하티르 총리는 현재 위기에 놓인 말레이시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정책들을 과감하게 펼쳐 나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 경제를 재도약시켜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을지 그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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