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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콧방울을 벌름거리며
입력 2018-05-31 13:26

“만 18세 이상 28세까지의 한국 여성. 지·덕·체의 모든 면에 진선미를 겸비한 사람. 직업 유무는 불문이나 흥행 단체 또는 접객업소에 종사한 일이 없는 미혼 여성.” 1957년 5월 19일 열린 ‘제1회 미스코리아 대회’를 앞두고 당시 주최 측이 내놓은 참가 조건이다.

“각 대학 각 학과 4년 급에서 (개신교) 신자로서 신앙이 돈독하며 성적과 품행이 우수하고 활동적이며 지도자격이 있는 대표적 인물. 신장은 160㎝ 전후.” 1961년에 정해진 이화여대 ‘메이퀸(May Queen)’의 자격 조건이다.

매년 오월에 열려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미인대회들이다. 자격 요건을 보면 외모는 기본, 내면의 미까지 갖춘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걸 알 수 있다.

1908년 처음 열린 이화여대 메이퀸 선발대회는 중단·부활을 반복하다 한국전쟁 이후 24개 학과가 ‘성 상품화와 평등권 위배’를 이유로 선발에 반대하면서 1978년 완전 폐지됐다. 미스코리아 대회 역시 ‘성 상품화’ 논란이 거세게 일자 2002년 지상파 중계를 중단했지만 대회는 계속 열리고 있다.

미인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기준이 다를 터. 동서양 미인의 차이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전통 미인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눈, 코, 입이 작고 눈썹은 초승달 모양이다. 이마는 반듯하고 얼굴은 통통해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다소곳한 분위기를 풍긴다. 서양의 미인은 어땠을까. 역사상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는 클레오파트라의 얼굴(로마시대 은화에 새겨진)을 살펴보다 좀 실망했다. 좁은 이마, 얇은 입술, 뾰족한 턱, 매부리코….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만 낮았어도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내 눈엔 결코 예쁜 얼굴이 아니다.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성형외과 원장인 친구는 “대부분 남자는 눈, 여자는 코 때문에 병원에 온다”고 말한다. 나는 넓고 두툼한 콧방울 때문에 고민이다. ‘콧볼 축소 주사’,‘콧망울 올리기 시술’ 등 전철 벽에 붙은 성형외과의 광고 문구에 눈이 절로 간다. 하지만 “넓은 콧방울은 돈이 들어오는 상이야”, “콧볼 줄였다가 숨쉬기 힘들면 어쩔 건데” 등 지인들의 회유와 협박(?)에 마음을 접곤 한다.

그런데 코끝 양쪽에 둥글게 내민 부분은 콧볼, 콧망울, 콧방울 중 어느 것이 바른 말일까. 콧방울만이 표준어이다. 방울처럼 내민 모양을 본뜬 말로, 글자 그대로 ‘코+방울’인 합성어이다. 뒷말 ‘방울’이 된소리 [빵울]로 발음돼 사이시옷 용법에 따라 ‘ㅅ’이 들어갔다.

많은 이들이 콧방울을 ‘콧망울’로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마도 눈망울 때문일 것이다. ‘망울’은 작고 동그랗게 부풀어 두두룩한 모양을 표현한 말이다. 눈알 앞쪽의 도톰한 곳은 눈망울, 아직 피지 않은 잎눈이 부풀어서 곧 피어날 듯한 잎은 잎망울이다. 꽃망울은 아직 피지 않은 어린 꽃봉오리를 뜻한다. 콧방울은 ‘망울’보다 ‘방울’ 모양을 근거로 내세운 세력이 더 커 표준어가 되었다. 그러니 ‘콧망울’은 쓰지 말아야 한다. 말에도 세력이 있어 약한 말은 밀리는 법이다.

‘콧볼’ 역시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지만 표준어에 오르지 못했다. ‘코+볼’ 형태에 사이시옷을 넣는 등 어법에 잘 맞고 어감도 예쁜 말이라 아쉽다. 콧날처럼 콧볼도 표준어에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크고 쌍꺼풀 있는 눈,오똑한 코, 갸름한 얼굴, 마른 몸매…. 노안 탓인지 20~30대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다 똑같아 보인다. 보름달처럼 희고 둥근 얼굴에 육덕(肉德)이 크고 뱃심도 좋은 ‘건강 미인’을 보고 싶다. 뜯어고친 얼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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