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14. ‘링컨 만년필’은 딥 펜이다

입력 2018-04-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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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연구소장

미국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고 노예를 해방한 사람.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한 이 사람은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고, 대통령까지 된 링컨은 대단한 메모광이었다.

링컨은 항상 모자 속에 종이와 연필을 넣고 다녔다고 한다. 왜 하필 모자 속 연필이었을까? 가슴팍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수첩에 메모를 하는 것이 더 멋있어 보였을 텐데 말이다. 당시 사정을 보면 모자 속 종이와 연필이 어울린다. 왜냐하면 링컨이 살던 시기엔 만년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외신에 링컨이 쓰던 만년필이 한 경매회사를 통해 4만11000달러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어찌된 일인가. 혹시 그 만년필들 중 하나를 링컨이 사용했단 말인가. 그 만년필은 1883년 뉴욕에서 보험업을 하던 워터맨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도 수많은 만년필이 존재한다. 다만 실용성이 없었을 뿐이다.

링컨이 태어난 해인 1809년 영국에선 역사상 최초로 만년필에 관한 특허가 등록되었고 1850년대엔 경화(硬化)고무로 만년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만년필은 실용성이 없었다. 잉크가 새는 것은 물론 잘 써지지도 않았다.

때문에 이런 만년필은 상용(常用)되지 못했고 아주 적은 수만 만들어졌다. 실용적인 최초의 만년필인 워터맨 만년필조차 첫해는 200개 정도를 만들었을 뿐이다. 정말 링컨이 그 만년필들 중 하나를 사용했다면 대단한 뉴스가 틀림없다. 하지만 사실 이 뉴스를 보자마자 뭔가 잘못된 뉴스라고 나는 직감(直感)했다. 왜냐하면 4만1000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4000만 원이 넘는 큰돈이지만 적은 개수가 살아남은 희소성과 링컨이 사용했던 역사성이 더해진 가격치고는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외신을 직접 찾아 봤다. Lincoln’s fountain pen으로 검색하니 $41250에 낙찰되었다는 기사가 바로 보인다. 사진을 보니 예상대로 만년필이 아니다. 펜대에 펜촉을 끼워 잉크를 찍어 쓰는 딥 펜이다.

딥 펜과 만년필은 다르다. 만년필은 잉크를 몸통에 저장하여 휴대할 수 있는 필기구이고, 딥 펜은 잉크를 저장할 수 없어 잉크가 담긴 잉크병 없이 단독으로 사용할 수 없다. 경매회사가 이 딥 펜과 만년필을 혼동했던 모양이다.

참고로 2000년 12월에 경매된, 용이 그려진 1920년대 후반의 만년필은 2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 링컨이 직접 사용한 만년필이라면 최소한 이 금액보단 높아야 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것은 ‘링컨만년필’이라는 만년필 회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중저가 만년필을 만들었는데 명작이라고 할 만년필은 없었다.

살다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난다. 그런 사람들 중 말끝마다 유명한 누구누구를 잘 안다는 사람이 있다. 이들 중 속이 꽉 찬 사람은 거의 없다. 만년필도 마찬가지이다. 잘 만들어졌다면 누구누구의 이름은 필요 없는 것이다. 명작 파커51이나 몽블랑149처럼 다른 이름을 내세울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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