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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 12년간 551명 사망... 원장은 300만원에 해부용으로 시신 팔기도
입력 2018-04-12 08:21   수정 2018-04-12 15:15

▲형제복지원 옛 전경.<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연합뉴스)

11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에 나서기로 한 가운데 해당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1987년 부산에 있던 부랑인 수용소다. 부산시와 부랑인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은 형제복지원은 3000여 명의 부랑인을 수용한 전국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기관이었다. 연고가 없는 부랑인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기술을 가르쳐 사회로 다시 내보낸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작년말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수용자의 98%는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기차역 대합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끌려간 사람, 시장에서 음식 먹다가 끌려간 사람, 저녁에 동네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도 잡혀갔다"며 "부랑인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형제복지원에 수용만 시키면 국가에서 인원 수대로 지원금이 지급됐다"는 증언이 방송됐다. 형제복지원이 해마다 국가로부터 받은 돈은 당시 20억 원에 달했다.

'뉴스쇼'는 또 "형제복지원 원장은 헌병 부사관 출신이어서 복지원 조직을 군대처럼 만들었다. 중대, 소대 나누고 중대장, 소대장, 총무, 조장, 소대원 등 상명하복 방식으로 관리했다. 수용자들은 아동소대, 청소년소대 등으로 나누어져 강제용역을 했다"며 "원장은 자기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든다면서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하고 하루 10시간의 중노동을 시켰다. 못 견디고 탈출 시도하면 굶기고 때리고 심지어 살해한 후 암매장했다"고 전했다. 12년 간 형제복지원에서는 551명이 숨졌다.

형제복지원 원장은 일부 시신들을 300만~500만 원을 받고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았다고도 알려졌다.

형제복지원의 실체는 1987년 우연히 산 중턱 작업장에 감금된 수용자들을 목격한 한 검사의 수사를 바탕으로 드러났다. 당시 수사 한 달 만에 형제복지원 원장은 특수감금,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구속됐으며 7번의 재판 끝에 업무상 횡령, 초지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형제복지원 폐쇄 이후 원장 일가는 '형제복지지원재단'으로 법인 명칭을 바꾸고 복지시설을 여전히 운영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당시 정권 외압으로 검찰 수사가 좌초된 바 있다. 이번 기회에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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