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대상선의 승부수 or 자충수

입력 2018-01-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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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 산업1부 기자

 ‘꼭 죽는 줄로만 알았던 때가 있었다. 그래도 결국 살아났다. 팔, 다리를 잘라내는 고통은 있었지만 든든한 새 주인도 생기고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현대상선의 얘기다. 어려움을 겪던 현대상선은 결국 최근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을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경쟁자도 없어진 마당에 살아나기만 하면 ‘승승장구’할 줄 알았건만, 내리 10분기 연속 적자를 면치 못했다. 살기 위해 다시 칼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문제는 그 칼 끝이 옛 주인을 향했다는 점에 있다.

 현대상선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현 회장 등 당시 결정권자들이 내린 결정으로 악성계약이 발생했고, 그것이 현재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에 영향을 주고 있기에 ‘눈물’을 머금고 내린 결단이었다는 설명이다.

 사실 냉정한 기업 세계에서 옛 모기업에 칼을 겨눈 것이 뭐 그리 큰일일까. 거기다 명백한 잘못이 있다면 오히려 더 냉정하게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야 할 일이다. 현대그룹이 과거 현대상선을 위해 로지스틱스와 현대증권을 매각했다.

 그러나 한참이나 늦은 고소 시기와 첨예한 다툼이 예상되는 소송의 근거 등을 고려하면 썩 개운치만은 않은 상황이다. 고소의 배후 세력으로 산업은행이 자꾸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산업은행의 압력이 있었던 것인지, 과잉충성(?)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마저도 생존을 위한 현대상선의 간절함 때문으로 이해하면 그마저도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현대상선은 지난 2년여간의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시장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번 일로 현대상선의 상장폐지 여부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앞뒤 없이 휘두른 칼이 제 살을 베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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