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하노 벡 외 2인 ‘인플레이션’

입력 2017-12-0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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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보다 어려운 ‘돈 끊기’

인플레이션이라는 주제를 갖고 역사를 종횡무진하듯 쓴 책이다. ‘인플레이션’은 역사상 치를 떨 만큼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독일의 하노 벡 등 작가들이 의기투합해서 내놓았다. 독일 최고 자산운용사의 창업자는 이 책을 두고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다. “돈의 역사는 인플레이션의 역사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이 야기한 수천 년 세계 제국 흥망성쇠의 역사, 번영, 전쟁, 재앙을 다룬다. 사실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를 떠올릴 때면 독일인만큼 처절하게 그 현상을 체험한 사람들이 없다. 히틀러의 집권과 독일 패망도 결국 인플레이션의 틈새를 비집고 그가 집권할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4부로 구성된 책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과거사뿐만 아니라 2008년 이후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풀어놓은 돈의 향방과 파급 효과를 다룬다. 무엇보다 쉽게 읽히도록 술술 풀어 쓴 저자들의 필력이 대단하다. △돈의 발명,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다. △누가, 왜 인플레이션을 만들고 이용하는가? △무엇이 자본주의의 판도를 움직이는가? △어떻게 인플레이션의 흐름에 올라탈 것인가? 등 4부 11장으로 구성됐다. 책의 목차에는 소주제에 대한 제목들이 낱낱이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목차를 찬찬히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전체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의 주연 배우는 국가인데, 저자들은 인플레이션의 전형적인 과정을 5막 희곡의 세계에 비유한다. 제1막에서는 배우들이 소개되는데, 그들은 재정 적자와 부채에 시달리는 국가이다. 국가는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폐를 발행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처음에는 토지, 건물, 귀금속, 세수, 식민지 혹은 기타 국가 사업에서 얻은 수입으로 지폐의 가치가 정상적으로 보장된다. 제2막에서는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국가는 경솔한 판단을 한다. 부족한 재정을 메우고자 화폐발행량을 늘린다. 제3막은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데, 부채가 증가하고 정부에서 적자를 메우려고 화폐발행량을 늘리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 3종 세트가 맞물리면서 경제 및 신용 위기가 따르게 된다.

제4막은 하강국면에 들어간 무렵부터 시작된다. 정부는 재앙을 막고자 상품 가격 동결, 금·은 거래 금지, 재산 몰수 등으로 대처한다. 결국 재앙이 오는 시기를 미루지만 제5막이 오른다. 인플레이션으로 통화가치가 무너지면서 정부는 고통스러운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

인플레이션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양적 완화 정책이 임시방편일 뿐 장기적 해결 방안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그렇지만 불황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각국 정부는 형형색색의 종이돈을 찍어내는 데 몰두한다. 게다가 양적 완화로 제로 금리에 접근하면 할수록 경제 리스크는 더욱 커진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들은 “대량으로 화폐를 공급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 현상에는 엄청난 위험이 숨겨져 있다. 자칫 잘못하면 개인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리스크가 큰 상품에 투자해야 하고 노후 대비를 위해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주식의 위험성을 과대평가하지만, 주식 투자 비중이 높을수록 수익률이 현저히 높다. 저자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뿌려놓은 돈으로 말미암아 “수년 내에 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마약을 끊는 것에 비유한다.

경제에 대해 별다른 지식을 갖지 않은 독자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인플레이션 전후 이야기, 재산을 보호하는 방법 등을 통해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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