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고향세로 농촌과 지자체에 활력을

입력 2017-11-2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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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세금을 내는 납세자가 세금의 납부 시기와 장소는 물론 세액과 용도를 스스로 결정해 농촌과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매력적인 제도가 있다. 일본에서 2008년에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후루사토(ふるさと·故鄕·고향) 납세’ 제도다.

고향 납세(고향세 또는 고향사랑 기부제) 제도는 도시에 거주하는 납세자가 원하는 지자체를 지정해 기부하면 일정 금액(2000엔 이상)을 소득세나 주민세에서 공제해주는 기부금 세액공제 제도다. 일본에서 고향세는 도입 전부터 찬반 논쟁이 일었을 뿐만 아니라 제도 도입 첫해에는 기부액이 81억 엔(약 900억 원)에 불과했다. 2014년까지 매년 기부액이 150억 엔에 미치지 못하는 등 실적도 미미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점차 기부액이 늘어나 지난해에는 2845억 엔(약 2조9000억 원)으로 크게 증가해 일본 농촌과 지자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고향세가 이렇게 활성화한 것은 무엇보다 세금과 기부의 장점을 잘 결합해 설계 운영한 데 기인한다. 특히 지난해 고향세를 받은 전국 1788곳의 지자체 가운데 1649곳이 세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밝혀, 납세자들에게 신뢰를 받아 젊은 층과 여성의 참여가 날로 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이에 못지않게 고향세 기부가 늘어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지자체들이 기부자들에게 답례품으로 제공한 해당 지역의 특산품이다. 지자체별로 제공한 답례품이 과열 양상을 보여 올 4월에는 일본 총무성이 나서서 기부액의 30%를 넘는 농축산물이나 환금성이 높은 상품권, 가전제품 등을 답례품으로 보내는 것을 제한하는 문서를 보내는 일까지 생겼다.

하지만 지난해 제공한 답례품 가운데 67%가 농축산물이어서 농촌 활성화에 직접적인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일본의 고향세 전문가인 지역창생(創生)전략기구 대표 나카야마 야스시는 “일본 전체 인구 중 고향세 납부 참여 비율이 10%에 지나지 않아 앞으로 고향세 증가 여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지자체들의 재정 자립도가 낮아 2007년부터 고향세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도시민이 내는 주민세의 10%를 고향으로 보내자’는 공약을 시작으로 고향세와 관련한 다양한 제안들이 있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대선 공약으로 고향세를 제시했으며, 현재 고향세 도입을 위한 여러 의원들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제5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서 새로운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 시대를 열겠다며 이를 위한 고향사랑 기부제법을 제정해 열악한 지방 재정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고향세 제도를 보다 내실 있게 만들어 지자체와 농어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노력이다. 그 첫 단계로 우리보다 10여 년 앞서 고향세를 도입,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시켜 가고 있는 일본의 운영 체계를 꼼꼼히 살펴보고 분석해야 한다. 장점은 도입하고 문제점은 개선해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고향세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아직 완전하게 정리하지 못한 답례품 제공 문제를 풀어야 하고, 납세의 편의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또한 농산물 소비 촉진과의 연계성을 높이고, 농어촌 일자리 창출과 지자체의 재정 확보 등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2019년에는 ‘고향사랑 기부제도’라는 고향세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 새롭게 시행되는 고향세가 잘 운영 정착돼 우리 농업과 농촌, 지자체에 활력을 불어넣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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