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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직업으로] 일상과 접목한 캘리그라피의 매력
입력 2017-11-22 13:15   수정 2017-11-22 16:22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반에서 가장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뽑기로 했다. 친구들이 추천해서 결선에서 둘이 맞붙게 되었는데 그 선수 중 한 명이 필자였다. 우리는 작은 몽당연필을 잘 깎아서 친구들이 빙 둘러서서 보고 있는 가운데 공책에 글씨를 써내려갔다. 누구 글씨가 더 멋진지 갑론을박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글씨를 정성스럽게 쓰는 습관이 생겼다. 일기나 편지를 쓸 때도 줄을 맞추고 위아래 배치를 신경 쓴다. 그림도 그려 넣는다. 그렇게 하면 편지도 작품처럼 만들 수 있다. 글씨는 그림과 비슷하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필체도 좋다. 이렇게 글씨를 재미있게 쓰는 게 일상화되었는데 어느 날 서점에서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게 되었다. 짧은 시구나 명언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액자에 넣었는데 아주 멋졌다. 도자기에도 넣었고 각종 소품에도 들어 있었다. 특별한 작품으로 탄생한 글씨를 보면서 매료되었다.


처음엔 선긋기부터 배운다

인터넷으로 캘리그라피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던 중 집 근처 지하철역 아래 큰 북카페를 지나게 되었다. 요즘 북카페에서는 인문학 강좌에서부터 독서토론, 자수 등 다양한 강좌가 이뤄지고 있다. 그중 캘리그라피 강좌도 있다. 금액이 한 달에 3만원이라 부담이 없고 일주일에 한 번 평일 저녁에 잠깐씩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필자는 조금 망설였다. 그 정도 시간투자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이왕 공부하려면 자격증도 따고 싶은데 북카페에서는 자격증까지의 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찾자낸 곳이 홍대 근처 전문 디자인 학원이었다. 최소 3개월 과정이고 수강료는 재료비를 포함해 월 40만원이 넘어 좀 비싼 편이었다.

그러나 캘리그라피 민간자격증 발급기관이었고 무엇보다 재대로 배울 수 있는 전문학원이라 등록했다. 일요반을 신청했는데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꼬박 글씨를 썼다. 글씨를 쓰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무아지경이 된다. 다섯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할 수 있다. 처음엔 선긋기부터 배운다. 수평·수직선을 긋고 자유 곡선을 그으면서 붓의 움직임과 그 끝에서 나오는 글씨의 형상을 체득한다. 어느 정도 기능이 익혀진 후에는 단순한 글씨 연습을 하고 그다음으로는 문장을 쓰게 된다. 문장의 의미를 잘 살리고 자기만의 해석으로 글씨의 모양, 크기, 배열을 몇 번 연습하고 난 후 화선지에 쓰는 것이다. 문장을 쓰기 전에 상상을 해본다. 이 단계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모양으로 쓴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글씨가 어느 정도 되면 인장을 파는 것도 배우고 도자기에다 글씨를 넣는 법도 배운다. 이 과정을 다 마친 후에 비로소 자격증 시험에 도전할 수 있다. 시험엔 두 가지 문장을 준다. 그것을 화선지에다 자기 나름대로 잘 표현해야 한다.


부드럽고 자유로운 움직임에 매료

캘리그라피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처음 연습할 때는 잘 쓴 캘리그라피를 복사하듯 따라 써본다. 여러 글씨체를 가리지 않고 다 써본다. 그렇게 쓰다 보면 원칙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요 단어는 다른 글씨보다 더 크게 쓰고 색상이나 글씨체도 눈에 띄게 쓴다. 전체 글씨의 배치는 사진의 구도와 같아서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여백이다. 이렇게 좋은 글씨를 따라 쓰다가 자기만의 글씨를 특화하면 나만의 캘리그라피 작품이 된다. 캘리그라피는 그 내용이나 용지에 따라서 필기도구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볼펜이나 사인펜 등 딱딱한 재질의 펜에 익숙해진 시니어에게 붓은 좀 어색하다. 그러나 연습을 지속하다 보면 부드럽고 자유로운 움직임에 매료된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움직여주고 강약이 감정을 표현해준다. 요즘은 상의 안주머니에 만년필을 꽂고 다닌다. 사인이 필요할 때 만년필을 꺼내면 주위 사람들이 특별한 시선을 보낸다.


언제 어디서나 작품활동이 가능하다

캘리그라피 자격증을 따고 나서 글씨를 쓰는 데 더 정성을 들이게 되었다. 작은 메모를 남길 때도 멋지게 쓰고 그림도 넣어둔다. 작은 메모지 한 장으로 신선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회의록을 쓸 때도 주요한 부분은 특별한 모양으로 글씨를 쓰고 여백에 작은 들국화 그림을 넣으면 보는 사람들이 작품이라 한다. 특히 손편지는 작품처럼 만든다. 아내는 필자의 손편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가끔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쓰고 그 시의 분위기에 맞는 그림을 그려 넣으면 시화전 작품이 된다.

결혼식 축의금 봉투 모서리에 멋진 꽃그림을 넣으면 특별한 기념품이 된다. 몇 년 전 부모님 팔순 때는 두 분에게 드리는 감사의 상장을 직접 만들었다. 감사의 글을 붓으로 쓰고 장정은 문구점에서 구입해서 그럴듯한 상장으로 만들었다. 그 상장을 받고 안방 탁자 위에 세워놓으셨다. 방명록을 준비해둔 전시회나 모임에 가면 모임 분위기에 맞는 그림과 글을 남긴다. 지인에게 액자 선물도 한다. 문구점에서 작은 액자를 사서 속지에 시 한 수 적으면 작품이 된다.

최근에는 활동하고 있는 시니어 커뮤니티에서 요청이 왔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시니어들에게 가성비 높은 식당을 찾아 ‘응원합니다’라는 액자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필자가 붓글씨로 써서 액자에 넣었다. 이렇게 캘리그라피를 일상과 접목하니 늘 작품활동을 하듯 즐겁다. 즐거우니 계속 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도자기와 캘리그라피의 접목을 준비하고 있다. 직접 흙을 빚고 글과 그림을 넣으면 특별한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동안 작품화한 도자기와 일상의 작품들을 모아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여는 게 꿈이다.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언제 어디서나 작품활동이 가능하다는 것과 그 시간엔 잡념이 사라지고 필자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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