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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국남의 직격탄] 미디어에는 장애인의 나라가 없다
입력 2017-09-14 10:45
대중문화 평론가

“여러분이 욕을 하시면 욕 듣겠습니다. 여러분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장애아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지 않나요.”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 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감과 주민 토론회. 장애 학생 어머니 이은자 씨가 욕설과 야유 등 일부 주민의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행한 눈물의 호소다. 이 씨의 절규는 돈 앞에서 인권과 양심이 무참히 짓밟히는 천민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각성(覺醒)의 비수가 됐다. 장애인을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도 부족해 이벤트로 간혹 등장시켜 편견과 왜곡의 색깔을 덧칠하는 TV를 비롯한 미디어에 대한 비판의 칼날이 됐다.

장애인 부모는 자녀가 교육받을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쏟아진 것은 학교용지에 한방병원 건립을 요구하는 일부 주민의 막말과 비아냥뿐이었다. ‘장애인 복지’는 고사하고 헌법에 보장된 장애인 학습권이 집값 하락이라는 사실무근의 부박(浮薄)한 논리로 무시되고 있다. 장애인 관련 시설은 편견과 독선으로 무장한 사람들에 의해 혐오시설로 둔갑하고 있다. TV와 신문 등 미디어의 문제는 없을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미디어가 구사하는 장애인에 대한 지배적 이미지와 관습적 서사(敍事)에 의해 좌우된다. 그동안 미디어는 장애인을 묘사하거나 전달하면서 다수자인 비장애인의 고정관념을 강화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불평등을 심화했다. 더 나아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혐오까지 조장했다.

또한, 미디어는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기보다는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힘없고 고통받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장애인의 의사와 욕망, 정체와 대면(對面)해 이들의 상황을 사회적 관심사로 드러내야 하는 책무를 방기했다. 사회적으로 장애인에 덧씌워진 낙인을 지우고 전환하는(transformation of stigma) 작업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함에도 오히려 편견과 왜곡의 주홍글씨를 더 강력하게 새겼다.

그뿐인가. 미디어는 장애인을 없는 존재로 무시했다. 우리 미디어에선 장애인은 1년 365일 중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다. 유아 프로그램에서부터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뉴스에 이르기까지 TV를 비롯한 미디어 콘텐츠에선 장애인 찾기가 힘들다.

이러한 미디어의 문제와 행태로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지적장애인 주인공을 자랑스럽게 흉내 내는 연예인 모습에 아무렇지 않게 웃음 짓는 시청자가 출현했다. 비장애인으로 가득한 TV에 간혹 등장하는 장애인의 모습에 짜증내는 사람이 생겼다. “특수학교를 세울 수 있게 해 달라”며 무릎까지 꿇은 장애인 부모에게 “쇼하고 있네”라고 야유하는 주민이 등장했다. 장애인을 집값 하락 주범(?)으로 인식하고 생활의 불편함을 초래하는 존재로 치부하는 대중이 양산됐다. 장애아의 학습권을 당부하는 어머니의 절규를 싸늘하게 외면하는 정치인이 배출됐다.

2017년 4월 기준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은 8만7950명인데 전국 173개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29%인 2만5467명에 불과하고 수많은 장애 학생이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불공정한 사회가 조장됐다. 장애인은 배제된 비장애인만을 위한 나라, 대한민국이 됐다.

미디어는 장애인에게 부정적 태도와 차별적 시선을 보인 사람들에 대한 비판에 앞서 그동안의 문제와 잘못을 자성해야 한다. 장애인을 위한 나라가 없는 미디어는 변해야 한다. 그런 다음 특수학교를 세우지 못해 장애 자녀가 교육받지 못한 현실에 절망하는 부모의 피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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