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S] 7개월째 허가없는 약과 비교해 복제약 개발하라는 식약처

입력 2017-09-0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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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2월 글리아티린 대조약 재지정 이후 삭제 조치 '감감'..행정심판 패소 이후 관련 규정 개정, 대조약 삭제 의견조회 착수하고도 이의제기로 중단, 제약사들 "무허가의약품 대상 생동시험 하라는 꼴" 비판

국내에서 허가가 없어진 ‘무허가 의약품’이 7개월째 제네릭 개발 대상 대조약으로 지정돼 있어 업계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제약사들이 무허가 의약품을 구해 제네릭을 개발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보건당국이 제약사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우물쭈물하면서 행정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조약은 기업이나 연구자가 개발하려는 의약품(시험약)의 비교 대상이 되는 의약품을 말한다. 제약사들이 제네릭 허가를 받을 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정한 대조약과 비교해 흡수 속도와 흡수율이 동등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주로 최초 허가된 오리지널 의약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대웅제약의 허가 취하 제품 ‘글리아티린’이 대조약으로 지정된 이후 7개월 동안 대조약 변경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글리아티린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뇌기능개선제로 지난해 3월 허가를 자진 취하한 제품이다. 제약사들은 허가가 사라진지 1년 6개월 지난 제품을 대상으로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식약처는 허가가 취하된 글리아티린을 대조약에서 제외하고 새로운 대조약을 지정하기 위해 관련규정 개정 절차를 거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대웅제약의 이의제기로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식약처, 작년 5월 허가취하 '글리아티린' 대조약 제외..대웅, 행정심판 승소→대조약 회복

1년 반 전에 허가가 사라진 ‘무허가 의약품’이 대조약 목록에 장기간 올라있는 기현상 뒤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대웅제약이 작년 3월에 허가 취하한 '글리아티린'
대웅제약은 지난 2000년부터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로부터 글리아티린의 원료의약품을 공급받아 국내에서 완제의약품을 생산·판매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대웅제약과 이탈파마코와의 계약 종료와 함께 글리아티린 원료의약품 사용권한과 상표권은 종근당으로 넘어갔다. 종근당은 이탈파마코로부터 공급받은 원료의약품으로 완제의약품을 만들어 ‘종근당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명으로 팔기 시작했다.

대웅제약이 더 이상 ‘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지난해 3월 글리아티린의 허가를 취하했다.

식약처는 지난해 5월 글리아티린을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하고, 종근당글리아티린을 새롭게 대조약으로 지정한 내용을 담은 ‘의약품동등성시험 대조약 선정 공고’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허가가 사라졌기 때문에 대조약 지위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식약처는 판단했다.

종근당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지정한 이유는 오리지널 제조업체 이탈파마코의 원료의약품을 사용했다는 점이 반영됐다. 사실상 원 개발사의 품목과 같다는 판단에서다.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을 보면 약사법에서 정한 신약,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 등을 대조약으로 지정한다. 신약이나 원개발사 품목의 허가가 취하되면 동일 성분 제품 중 전년도 청구수량이 가장 많은 제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될 수 있다.

▲식약처는 지난해 5월 글라이티린이 허가가 취하됐다는 이유로 대조약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대웅제약은 식약처가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삭제와 종근당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지정을 문제삼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중앙행심위)에 식약처의 대조약 선정 공고를 취소를 요청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대웅제약은 글리아티린이 대조약 공고 삭제 시점에 시중에 충분히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조약 삭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글리아티린의 품목허가가 취하됐다는 이유만으로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한 것은 근거가 분명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대웅제약은 대조약 변경 과정에서 사전통지나 의견조회 등 사전절차를 거치지 않아 대조약 삭제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논리도 펼쳤다. 또 종근당글리아티린이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조약으로 지정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에 중앙행심위는 대조약 지정 절차상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대웅제약의 손을 들어줬다.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지위 박탈도 관련 규정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도 인정했다.

◇식약처, 지난 2월 글리아티린 대조약 재지정..규정 개정 이후 대조약 삭제 재시도

중앙행심위의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식약처는 대조약 선정 공고를 이전으로 되돌려놓아야 했다.

▲식약처는 지난 2월 허가 취하된 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지정했다.

식약처는 지난 2월 의약품 동등성시험 대조약 선정 공고를 통해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 의약품 중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기존에 대조약으로 지정됐던 종근당의 '종근당글리아티린'은 대조약 지위를 상실했다. 11개월 전에 허가를 취하한 제품이 대조약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후 식약처는 행정심판에서 지적된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 규정 개정 작업을 진행했다.

식약처는 지난 4월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 개정을 통해 의약품 대조약 선정기준 중 원개발사의 품목을 명확하게 정하고 품목 취소(취하)된 품목을 대조약에서 삭제하는 내용 등을 반영했다. 글리아티린과 같이 허가가 사라진 의약품은 대조약에서 제외하는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글리아티린을 염두에 둔 규정이다.

▲식약처는 지난 5월 허가 취하 의약품을 대조약에서 제외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 개정 고시를 공포했다.

식약처는 개정 고시된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을 근거로 지난 5월 글리아티린을 포함한 허가 취하 의약품을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대조약 공고 삭제 품목 의견조회'를 진행했다. 중앙행심위가 대웅제약이 주장한 대조약 지정 절차가 문제 있다고 지적하자 사전 의견조회 절차를 거쳐 글리아티린을 다시 대조약에서 제외하겠다는 의도였다.

▲식약처는 지난 5월 19일까지 글리아티린을 포함한 허가 취하 의약품을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대조약 공고 삭제 품목 의견조회'를 진행했지만 후속조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대웅 이의제기로 대조약 삭제 지연..제약사들 "무허가 약으로 생동성시험 해야할 판"

당시 식약처는 5월 19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삭제 이후 새로운 대조약을 지정할 계획이었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대조약 삭제 조치는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식약처 관계자는 “대조약 삭제 의견조회 이후 대웅제약에서 글리아티린의 허가를 취하했지만 시중에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대조약 지위는 유효하다라는 이의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의약품동등성시험 기준 개정을 통해 허가 취하 제품을 대조약에서 삭제하는 근거를 마련했지만 글리아티린에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서도 대웅제약 측이 문제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웅제약이 또 다시 대조약 삭제 여부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조약 삭제와 새로운 대조약 지정 절차가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중앙행심위의 판단 이후 지난 2월 허가가 없는 글리아티린이 대조약 지위를 회복하고, 식약처가 관련 규정 개정을 통해 대조약 변경을 시도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7개월째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지위 유지는 지속되고 있다. 글리아티린은 허가가 사라진지 1년 6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대조약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식약처와 대웅제약간의 공방으로 인해 대조약 변경 절차가 지연되면서 제약사들에 불똥이 튀게 됐다.

현재 제약사들이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제네릭을 개발하려면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설정해 생동성시험을 진행해야 한다. 1년 6개월 전에 허가가 취하돼 약사법상 무허가 의약품이나 다름 없는 약을 구해야 제네릭을 개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허가 취하 제품을 대상으로 생동성시험을 진행하는 것도 전례가 없지만, 설사 글리아티린을 구했더라도 유효기간이 남은 제품을 찾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제약업계에서는 식약처와 대웅제약간의 논쟁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조약은 제네릭 개발시 동등성을 비교하는 대상을 지정한 것일뿐 특정 기업에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약사들은 어떤 제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됐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특정 제품이 대조약인지 아닌지를 놓고 장기간 논쟁이 펼쳐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조약은 제네릭 개발시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절차에 필요한 도구일 뿐인데, 소모적인 공방이 장기화하면서 다른 제약사들만 불편을 겪게 됐다”라고 토로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면서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업계의 혼선이 길어지지 않기 위해 조속한 시일내에 후속조치를 결정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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