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관우(官佑) 훈련소 가던 날

입력 2017-07-2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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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 우리 가족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관우의 군 입대(入隊)날이 정해져 할머니인 내가 잘 다녀오라고 내는 저녁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했지만 내 머릿속에선 많은 생각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에겐 오빠가 한 명 있었다. 1950년, 청주대학교 2학년 때 자진 입대를 한 후 적과의 교전(交戰)에서 총에 맞아 숨을 멈췄다. 경기도 안양 어느 부근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부처님 앞에서 108배를 하며 공(功)을 드리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오빠는 위기를 느껴 대장과 옷을 바꿔 입고는 대장을 탱자나무 밑에 숨기고 대장인 척 앞으로 돌진하다 총탄에 맞았다고 했다.

훌륭한 군인정신이라고는 하지만,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살았지만 죽은 삶을 살아야 했다. 오빠의 무덤에서 딱 보름을 밤낮으로 지키고 언니들이 무덤으로 밥을 날랐던 것을 나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어느 날 새벽, 그렇다, 딱 보름이 되던 새벽 어머니는 스스로 집에 돌아오셨다. 까마귀 수만 마리가 어머니 머리 위를 날며 공격했다는 것이다. 실제 상황인지 어머니의 상상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사람들은 아마도 정(情)을 떼려는 것이라고 수군거리곤 했다.

어머니는 내 밑으로 있는 하나 남은 아들에게 거의 목숨을 바치셨다. 그 아들을 지키는 것이 어머니의 모든 생이었던 것처럼 그 아들에게 전 생애를 바셨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이 오빠를 잊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늘 말씀하셨다. 1950년 네 살이었던 그 아들만큼은 군 입대라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이놈이 자라면 군대 같은 거 없을 끼다.”

우리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암 그렇지, 그리고 67년이 지났다. 1950년 여덟 살이던 내가 일흔이 훨씬 넘었고 내 손주가 군에 입대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어머니가 들으면 놀랄 일이 아닌가. 인간이 잘못 살아온 것이거나 이기적이거나 뭐 그런 것일까. 어머니가 하나 남은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 무슨 이런 나라가 있냐고 막걸리를 두 병 비우고 우시던 모습이 바로 어제 같다. 그리고 67년이 지나가고 내 손주가 군 입대를 하는 것이다.

국가의 의무이니 건축학을 좋아하고 시(詩)를 쓰기도 하는 내 손주 관우도 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관우에게 말했다. 병사(兵士)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실제 전쟁이 나지 않더라도 군 생활은 또 하나의 전투이다. 전투에서 이기려면 마음이 몸을 움직이게 하라. 몸이 마음을 명령하게 되면 지는 일이다. 우리 가족은 널 사랑하고 꾸준히 날마다 기도할 것이다.

관우는 씩씩하게 할머니와 포옹하고 돌아섰다. 뒷모습이 든든해 보였다. 딸이 마음 아픈 것은 하나의 계단을 오르는 일. 자식을 키우려면 삼천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쟁은 비극적인 과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미래의 세상에는 전쟁이 발붙일 곳이 사라져야 한다”고 하셨지만 세계는 지금도 긴장 속에 있다. 북에서 미사일이 날아오르는 이 여름 아들을 군에 보내는 딸은 눈가가 젖어 있지만 군 입대도 공부이며 사회생활이며 무엇보다 한 남자로서 생에 거는 약속인 거다.

그러나 관우가 딱 하나, 자신의 미래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답만큼은 가지고 집으로 오기를 나는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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